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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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일은 온갖 일을 경험한다는 의미입니다.
그중에 근심된 일도 참 많습니다.
1) 근심
근심의 사전적 의미는 “해결되지 않은 일 때문에 속을 태우거나 우울해 함”입니다.
개인적인 의미로는 무엇인가요? “내 뜻대로 안 되는 경우”입니다.
이때에 신체적으로는 심박수가 빨라지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심하면 우울감이 지속되곤 합니다.
마음의 근심이 역시 마음의 병을 만든 것입니다.
이 근심에 대한 정체가 이미 나와 있습니다.
한마디로 망상이고 몽상인데,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걱정이 (40%)
이미 해결된 일에 대해서 (30%),, 그러므로 대체로 불필요한 걱정입니다.
이런 근심 왜 할까요? 습관이며, 연약성이며, 성향입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 보고, 듣고, 느끼는 반응이기 때문에 옆 사람에게 전이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뜻에 맞는 근심이 있다면 믿겠나요? 이런 근심은 해야 됩니다.
따라서 몸에 미치는 반응도 다릅니다,
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
상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약인데 만지거나 먹으면 치명적인 약이 있고, 누구나 먹을수록 좋은 보약이 있는 이치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뼈를 마르게 하는 염려나 걱정은 세상 근심 속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염려와 걱정을 과도하게 하면 낯색도, 체중도, 입맛도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특별히 염려는 나누어지는,, 건널목 같은 마음상태를 이룹니다.
근심한 그 일에 마음이 갔기에,
다른 일에나 혹은 다른 주체에 마음과 힘을 쓸 여력을 잃게 되어 주님과도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시면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다지신 것입니다.
지금 내 마음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낯색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고, 상대방에 대한 말도, 태도도 다르기 때문입니
다.
주님은 주님의 제자들이,, 또 훗날 믿음의 성도들이,, 은과 금으로 치장한 모습 보다 평안과 기쁨의 사람들로 세상
을 이기며 사시길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근심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기는 새 힘을 주셨는데 많습니다.
요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
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특별히 14절은 이는 어마어마한 약속이며 큰 병기를 주신 것과 같습니다.
2) 믿음으로
문제는 이 약속을 믿지 못하고 이 비밀병기의 사용법을 모르는 게 유감입니다.
단순하게 하나님과 주님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
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진실로 진실로”는 요한복음에만 25만 기록되었습니다.
헬라어의 아멘이,, 진실의 뜻입니다.
그래서 “진실로 진실로”는 살아 있는 말씀이라는 주님의 증거이며,
내가 “아멘” 하는 일은 그런 능력이 임하길 염원하는 고백인 줄 믿습니다.
왜 그런가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고 “글쎄” 혹은 “설마” 하는 식이니,, 단순한 이 믿음이 흔들거려 삶 전체가 흔들립니다.
요즘 제주도에서는 집을 많이 지어서 “담장이” “돌장이” 라는 돌담을 쌓는 일이 인기랍니다.
그들의 손은 성한 손이 없었고,, 년수 따라 손은 망가져 있었습니다.
이 돌담을 쌓는 요령은 단순하답니다.
큰 돌을 아래에 먼저 놓고, 그 위에 여러 돌을 넣고 작은 돌로 채우는 일인데 단순한 듯해도 적재적소에 돌 필요를
아는 감이 기술이랍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렇습니다.
처음과 나중과 모든 범사에 “믿음믿음” 하지만 자기 삶에 맞는 믿음이 없어서 부실한 돌담처럼 신앙이 무너지고 혹
은 볼품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어라”
그러면 믿음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요14: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
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주님이 이루신 모든 기적은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나나낸 표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단어가 있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문맥상 ‘갈’ 자가 없느니라 해야 맞는데 ‘올’자라 하셨습니다.
또 은혜를 보존하시는 보혜사 보내심입니다.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다른 보혜사’ 무슨 뜻인가요? 같은 공장에서 만든 같은 제품이라도 다릅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몸을 입으신 보혜사셨다면,, 이제는 형체는 없는,, 그러나 역할은 같은 보혜사를 보내신답니다.
곧 성령이신데 말씀처럼 오셨으며,
말씀처럼 유대 땅과 제자들만이 아닌 모든 성도에게 지금도 보혜사로 계시는 줄 믿습니다.
이 보혜사는 주님을 나타내고 믿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구하여야하고 만나야 됩니다.
여기에 마음과 시간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3) 회개에 이르는 근심
성령님을 만나면 거듭남이 옵니다.
나는 나인데 성향이 달라진 만큼 근심의 내용도 달라집니다.
전에는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까? 였다면 이제는 주님을 어떻게 기쁘시게 할까? 로 바뀝니다.
그래서 경건과 복음의 합당한 생활을 먼저 구합니다.
관심되는 내용과 세상사는 태도가 점점 달라지는데,,의와 영혼과 주님이 중심이 됩니다.
최근 청소년들을 꿈꾸게 하기 위해 12년 전 꿈 재단을 설립한 대표를 만났습니다.
그는 30년 전에 탈북자를 대한민국과 미국의회에서도 소개한 기자였기에 친분이 있습니다.
31살에 과부된 엄마 슬하에서 4남매의 장남으로 자란 그의 집은 가난한 시절 막내 동생에게 전달되는 미국 재단에
서 보내온 매달 10불이 요긴했었답니다.
그때의 10불이 지금은 선순환으로 불우한 청년들에게 꿈을 꾸게 하고 싶어 재단을 세운 것입니다.
또 초등학교 때 선생 한 분이 친절을 베풀어 주어서 희망을 얻어 선생이 되고자 사범대학교를 갔지만 기자가 되어
전장을 누렸고,,대통령 비서관, 대변인, 문체부차관을 지냈습니다.
그가 지은 책 가운데 “희망과 맞팔하다.”를 주었습니다.
그 속에는 강연한 내용들이 있는데 선생님들 강연에서는 “선생님 당신이 희망입니다.” 그리고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서는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다.”였습니다.
불신자집안의 장손이었지만 홍역으로 죽어갈 때 어머니간청으로 목사님 기도를 받고 살았고,
잠자리에서 엄마의 간절하면서도 힘들어 호소하는 기도를 듣고 자랐답니다.
그러나 그의 고백대로 그런 모든 가난도 자양분이 되었답니다.
비슷하게는 홍대 정문 앞의 한 좋은 건물을 내가 압니다.
주인이 누구인지도 압니다.
그러나 그는 수년 전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가 그 건물을 살 때와 사는 과정을 잘 알기에 그 건물을 스치면 허무를 느끼면서 늘 한 말씀이 떠오릅니다.
“죽은 사자 보다 산개가 낫도다”
결론) 사는 일에 관하여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위하여 천국에 맨션을 준비하시는 주님을 하나님으로 다시 믿고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
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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