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니 두려워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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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춘들이 죽음을 선택했을 때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저들에게 주님이 계셨더라면,,아쉬워하곤 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할 크고 두려운 불행과 고통에서 몸부림치던 욥이 그 속에서 붙잡았던 힘은 하나님이었기 때문
입니다.
욥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
라
욥은 훗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회복되는 자신을 믿음으로 내다보았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1) 우리의 세상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언제나 어둡고 요란하며 시끄럽습니다.
뉴스를 보십시오,,그런데 망하질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종말을 향해서 가고 있는 만큼 의인의 득세보다 악인의 득세가 성행하고,
기후와 전쟁의 징후도 점점 짙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한마디로 먹고 살기가 어렵고 불신은 더 짙어,, 죽을 일이 쌓인 지경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성장을 1%로 고쳐 발표했고 대인 신뢰도는 9년 사이 74%에서 53%급락했으며, OECD 중 삶
의 만족도는 하위권에서 더 하위권이 됐고, 자살은 13년 동안 여전히 1위인데 작년에는 14.439명이었습니다.
(2024 삶의 질 보고서, 통계청)
이럴수록 느는 것이 있는데 짐작하시나요?
술 판매량과 사치품이며 또 아무런 실속 없는 허세작렬인 ‘나의 행복과시’ 현상입니다.’
이런 일은 왜 일어날까요?
자신보다 남 의식에서 나오고 지혜보다는 지식이 충만해서 그렇습니다.
남을 의식한다는 자체는 내면이 빈병처럼 비어졌음을 의미하고, 아무리 배웠어도 지혜가 없으면 자타가 겸손하다
고 해도 이미 교만이 충만해서 자신만 있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 상처주고 서로 피 흘리기를 즐거워하는데 결국 함께 멸망하게 됩니다.
욥이 고난 속에서도 친구들에게 선포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잠28:28) ~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이 말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배웠던 지식의 말이 아닙니다.
이런 지식의 말은 환난과 고통 중에는 기억도 안 납니다.
그러나 경험된 지혜의 말이었기에 진리로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욥30:30~31) 나를 덮고 있는 피부는 검어졌고 내 뼈는 열기로 말미암아 탔구나
내 수금은 통곡이 되었고 내 피리는 애곡이 되었구나
이 상태를 짐작할 수 있겠나요?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러므로 청년출세보다는 청년고생이 훨씬 유익한 줄 믿어야 됩니다.
청년의 때에 창조주하나님을 기억하여 지혜자가 되고 점점 하나님 경외한다면 그의 성벽은 노년에 이르도록 튼튼
할 것입니다.
2) 저물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날들에서 좋은 일이 많은가요? 고난이 많은가요?
고난의 면역과 주님에 대한 믿음의 백신이 있다면 세상이 어떻든 살만하게 됩니다.
고후4:8~9)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
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믿음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냥 형통한 것이 아니라 형통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만큼의 거룩함과 담대함과 순전함과 충성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모습과 상황을 살펴보십시오.
16~17절)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세상에서의 우리 모습 아닌가요?
누구에게나 어둠과 바람과 파도가 있는데 크기만 다를 뿐 문제는 문제인 것입니다.
바다의 전문가는 어부들인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물매” 또 “큰 바람이 불어” 또 “파도가 일어나더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최선책은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쯤 가다가” 물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몰라 뵙고 유령인
줄 알고 소리 지르며 두려워했던.. 나름의 전문가라지만 이렇듯 한계의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한계적 존재’인 자신을 아는 힘이 지혜이고 모르면 교만이고 자만이며 그래도 모르면 마침내 멸망의 선
봉인 것입니다.
대체로 많은 사고는 이런 무지와 자만과 교만에서 생기므로 경고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런데도 바다에 빠지거나 넘어졌다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여전한 불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에 절대로 행복이 힘이 되질 않고 힘이 되는 그 무엇도 없습니다.
미국에서 최고 권위의 암 학자는 우리나라사람입니다.
그의 인터뷰 중에 고인인 재벌회장의 경험담이 있었습니다.
“재산의 절반을 줄테니 고쳐달라” 는,,그러나 그렇게 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사람은 죽는 존재로 되었기에,,
그래서 암은 인류가 완전히 없애질 못하고 함께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어떤 무엇도 내면적인 나를 세워주지 못하며 하나님 앞에서는 더더욱 없습니다.
바람불고 파도가 치는 곳이 바다이듯이,, 이런 풍랑이 이는 곳이 언제나 세상이고 시대입니다.
썩은 기둥, 가짜 약, 사기 치는 친구, 사이비종교, 살기도 힘든데 정신도 차려야 됩니다.
누가 무너지면 함께 무너지고 생각지 못한 복병이 와서 쌓아 논 성을 부수기도 합니다.
음주운전해서 온전한 경우가 있나요? 남도 자신도 망하기에 살인이 됩니다.
함부로 새둥지와 개미집을 부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돌고 돌아 내가 부서지기 때문입니다.
3)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힘들게 사는 청년을 유심히 본 슈퍼마켓하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청년이 라면 1개를 외상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기에 쾌히 허락하면서 구청에다 지원요청을 해주었습니
다.
그리고 얼마 후 청년이 편지와 20만원을 보내왔습니다,
덕분에 살았고 취직이 되어서 월급을 받았다며 부부가 외식할 때에 보태라면서,,
부부는 이 일로 살맛이 났다는데 실제는 자신들이 먼저 청년을 살려주었던 일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찾아 나섰지만 갈 바를 몰랐어도 주님은 제자들을 바로 찾아오셨습니다.
누가 확실한가요? 주님은 어디서나 제자들을 보셨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더욱이 풍랑 이는 바다를 걸어오셔서 유령인가 싶었지만 제자들의 문제와 두려움의 크기를 정확히 알고 계셨으리
라 믿습니다.
성경에 언제나 주님다운,, 주님만이 하신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내니 두려워 말라”는 곧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입니다.
주님 잡히실 때도 “나다”하심으로 군병들과 하졸들이 엎드러졌던 그 권위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풍랑 이는 바다위에서도 제자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이 음성과 말씀을 들어야 세상을 이깁니다.
이 주님을 내가 영접하므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고 하나님 거하시는 성전도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이 성전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지체가 되어 연합된 한 몸을 이루며 동행하시고 동거하시므로 분명한 주님
의 보장이 따릅니다.
히13:5~6)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
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
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언제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이 하신 말씀 “내니 두려하지 말라” 또 다른 말씀으로는 “내니 범죄하지 말라” 또 “내니 너무 흥겨워하
지 말라”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성경말씀을 마음 판에 새겨 순종하라하십니다.
둘째는, 주님을 배로 영접하는 경건의 모습인데 여러 모양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요6: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하루의 시작에서, 운전의 시작에서, 일 시작에서, 주님을 영접하여 순종하는 의지입니다.
결론) 마귀는 언제나 성도를 두렵게 하고 주님이 없다고 속살거립니다.
그러므로 환경에 치우치기 보다는 주님을 영접하신대로 살아야 합니다.
암이나 운전에 보험만 들었어도 한결 든든합니다.
전능자께서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 말씀을 묵상하며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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