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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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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5-04-20 15:24 조회 6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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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감동이란 말을 참 좋아하며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나 좋은 감동을 이루지 못하고 되레 바라기만 합니다.

감동이란 느낄(感) 움직일(動)으로 느껴서 움직인다. 는 뜻입니다

좋게 느꼈으면 좋게 움직일 것이고, 나쁘게 느꼈으면 나쁘게 움직일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감동스런 일을 겪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나라사랑기도회에 나를 강사로 초청했습니다.

사양하고 사양했으나 이들의 뜻이 대견해서 마침내 수락했습니다.

그러나 큰 부담과 감동이 왔기에 이들의 기도회를 방송사에 소개하며 격려를 부탁했습니다.

 

우리가 믿고 전하는 주님이 부활하셨고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복음은 구원의 능력을 이룹니다.

성도는 여기에 감동이 있고 역시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1) 부활의 능력

우리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죽을 뻔한 상태에서의 다시 사심이 아니라 완전 죽어 장사된 후에 다시 살아나심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흔하지는 않지만 처음은 아닙니다.

성경에서도 그렇고 인류역사에 보면 다시 산사람이 있습니다.

고전15:12~14)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

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

나지 못하였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였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

희 믿음도 헛것이며

 

이 말씀은 무얼 의미하나요?

부활은 특별하긴 해도 이미 일류의 삶에서 사실이고 진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는 부활에 대해서 딴지 걸지 말라는 단호한 메시지입니다.

 

이 부활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르게 믿는 일은 먼저 바르게 느껴야할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부활의 능력은,,주님을 사망권세에서 풀어 일으키신 능력으로 주님의 자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

다.

엡1: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

른 편에 앉히사

 

이런 부활의 상징인 생명력을 봄이면 더욱 실감하곤 합니다.

겨울 내내 얼거나 바짝 말랐던 나무들이 종류별로 일제히 꽃을 피워내기 때문입니다.

이 질서와 능력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태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고 그분의 완전한 능력이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이루는 힘은 하나님능력이었고 훗날 성도에게도 이 능력으로 다시 살리실 줄 믿습니다.

겨울에 꽃을 피워 상품으로 꽃을 내는 화훼농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저들이 한겨울 비닐하우스에서 따뜻한 기온을 만들어 꽃은 물론 남방과일도 제철마냥 생산하니 하나님은 오죽하실

까요?

 

2) 부활의 이유

왜 하나님은 그 크신 능력으로 주님을 부활시키셨나요?

이유가 등장합니다.

벧전1:3) ~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

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오직 “ ~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였습니다.

부활의 이유는 상대가 아닌 오직 하나님께 있었던 것입니다.

‘긍휼’의 뜻을 아시나요?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줌입니다.

우리는 불쌍히만 여겨도 훌륭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돌보는 행동까지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 많으신 긍휼” 이시니,,불쌍하게 여기시고 계속해서 돌보아주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이처럼 크게 긍휼히 여기셨을까요?

십자가에 처절하게 못 박히고 돌아가신 아들인 그리스도일까요?

아님 그 분을 통해서 마침내 살리신,,

내 죄로 말미암아 이미 정죄 받아 영벌에 처할 나일까요?

놀랍게도 아직 하나님을 미처 알지도 못했던 나였습니다,

벧전1:3) ~ 예수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

망이 있게 하시며

 

먼저 익숙한 단어 두 개를 주목하십시오.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곧 우리를 재차,, 다시 새롭게 태어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첫 번째 태어남은 부모로 말미암은 죄 가운데에 태어난 죄인이었습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믿지 못했던 밟히는 모래 같은 존재였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했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나를 사랑하듯이 사랑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가 봄의 온기가 대지를 감싸듯이 전능하시고 그 많으신 긍휼의 하나님의 성령이

내게 임하셔서 나는 생물적으로는 여전해도 성품이 새로워진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지식에 대한 인식이 ‘없는 하나님’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으로 고백되어 지고, 그 하나님과의 관

계가 먼 하나님이 아니라 가까운 하나님으로까지 변화가 온 것입니다.

이런 일은 거듭남의 시작이었습니다.

아기가 자라면서 먹거리, 운동, 호기심이 달라지듯이,,하나님의 지식에 호기심과 말씀에 대한 갈급함과 주님께 대

한 고백이나 감사가 표현됩니다.

얼마 전에는 성찬예식이 있다 해서 참예하고자 하고, 오늘 부활절이라고 해서 이렇듯 함께하는 이유가 바로 이 거

듭남의 특성인 줄 믿습니다.

이 이런 모습이 저절로 되는 일이 하나님께 대한 감동이 이미 있어서 그런 것이며,, 더 강력하면 나를 드리고도 “늘

아쉬운 마음뿐이네” 로 고백됩니다.

 

3) 부활의 능력

이런 거듭남의 성도에게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비밀이 있습니다.

벧전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

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암탉이 낳는 달걀은 보호막이 발라져서 나오기에 씻으면 세균이 침투하여 불량품이 됩니다.

사람은 어떤가요? 세상사는 동안 안전을 위해서 보험도 들고, 옷도 입고, 백신도 맞고, 별별 준비와 차림을 하면서

삽니다.

 

성도는 어떨까요?

말세에 사는 성도에게 하나님은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셨습니다.

고후4:8~10)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

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성도가 얻은 거듭남의 새 생명은 주님과 같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같은 생명이고,

또 하나님의 영 곧 주님의 영이신 보혜사성령께서 항상 함께 동행 하시니,, 욱여쌈도 있고 답답한 일도 있고, 박해

나 거꾸러트림을 당하는 일은 있어도 결국은 안전합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으신 분이시기에 말씀과 능력과 약속의 보장도 불변할 줄 믿고 거룩하며 담대해야 합니다.

 

중국의 교회들은 음성적이든 양성적이든 박해를 받습니다.

최근에 돌아 본 음성교회는 애들까지 합쳐서 30명의 성도였습니다.

그동안 3번을 공안의 단속을 받고 다시 옮겨 온 장소에서 예배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교회간판도 어떤 표지도 없었습니다.

25평짜리 오피스텔인데 방음처리비용만 1000만원이 들었고 십자가는 마음에 있다면서 천장에 십자형 형광등을 달

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공안의 단속을 받을 때 목사님자신이 책임자라고 해도 처벌받지를 않았습니다.

이런 교회가(교회이름 없음)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 북한에 쌀 보내기를 하며 중국 전역에 24명의 목회자를 세웠다

고 했습니다.

 

결론) 사도바울은 디모데와 디도와 같은 믿음의 아들이요 제자를 두었습니다.

이들이 또 믿음의 제자들을 두어 하나님나라가 확장되었습니다.

딛후2:2~3)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

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부활신앙은 역동적이고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 긍휼하심처럼 긍휼히 있고 무엇보다도 생명은 생명을 낳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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