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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행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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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5-06-15 20:04 조회 6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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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달력을 사용하고 교회는 교회력도 사용합니다.

이발소에 있었더니 이발소 이웃집부인이 이발사에게 감자를 쪄서 갖다 주었습니다.

이유를 몰랐던 잠시 후 이발사는 “아,,오늘이 하지로구나,,하지감자” 하며 옛추억을 소환했습니다.

 

1) 수전절과 예루살렘 행각

우리나라도 국가와 민족이 함께 지키는 명절이 있고 단오나 하지 같은 의미가 작은 절기도 있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무엇이 의미가 더 큰가요? 같습니다.

그러나 지난 주일은 성령강림절이고 이번 주일은 삼위일체주일인데,, 모르고 스칩니다.

 

옛 유대교도 그랬습니다.

초막절은 아주 큰 명절인 반면 3개월쯤 지난 수전절은 좀 가려졌습니다.

이 수전절의 이름을 보면 ‘새롭게 한다’ 는 뜻의 개혁적인 이름입니다.

이 날의 축제는 가정마다 작은 등잔불을 많이 밝혔고 성전에는 큰 불을 밝혀 빛의 축제를 이루었습니다.

 

현대도 그렇지만 옛날에는 동서를 떠나 전쟁이 얼마나 잦았나요?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인 만큼 약탈도 생존의 한 방편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도 많이 침범 당했습니다.

예수님보다 한참 앞선 시대에서 수리아군대가 침범했습니다.

그때의 예루살렘성전은 이방신에게 제사하는 성전이 되었고, 성전 금붙이도 뜯어가는 약탈도 당했습니다.

이때 경건한 유다의 마키비 형제가 봉기하여 침략자를 물리치고 새롭고 성전을 공사했던 기념일이 수전절입니다.

 

또 솔로몬 행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성전이 본관이었다면 그 옆의 별관 기둥인 것입니다.

역시 로마군대의 침공으로 지붕은 없어지고 기둥만 있는데 훗날 간이 지붕을 얹어 우기철에는 비바람을 피하는 임

시처소요, 주님의 제자들에게는 복음을 전도하는 전도처가 되었습니다.

행3: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주님은 여기서 거니신 것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주님의 이 거니심이 궁금했습니다.

산책하시면서 운동하심이실까? 설교구상이실까? 다가올 미래에 대한 구상이실까?

이 모습으로 보면 주님은 행동적인 분이시지만 또 정서적인 분으로도 보여졌습니다.

또 궁금한 것은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초막절 이후 지금의 수전절까지 3개월 기간을 어디서 지나셨을까?

예루살렘에 계셨나? 갈릴리를 다녀오셨나?

그러나 유대인들이 또 벌떼처럼 에워싸고 태클 거는 분위기로는 계속 계신 듯합니다.

 

2) 논쟁

유대인들과 주님과의 논쟁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적극적인 원고였기 때문입니다.

요10: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그들에게는 하나님 없이 각종 이론과 시비꺼리만 있는 탓입니다.

똑똑하고 경건하듯 보여도 실상은 잡동사니와 쓰레기만 가득한 종교주의자들이고 지독한 율법주의자들입니다.

모든 다툼이 이런 이론에서 나오고, 인간본위의 철학에서 나오지 성경이나 주님의 말씀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골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이 경고와 이 확증은 언제나 유효하고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껍데기를 잡으면 언제나 시끄럽고 도토리 키 재기를 하느냐고 요동치곤 합니다.

 

이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말하지만 하나님이 없고, 모세를 말하지만 위선이고, 주님과 논쟁을 해도 목자의 음성은 듣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요10:25~27)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

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

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우리나라의 특징이 많이 있습니다.

다 국민성에서 비롯된 것들인데 그중에 최근 들어 떠오른 특성은 정치성입니다.

정치의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확실한 진영지지,,비슷하게는 팬클럽과 그 활동과 같습니다.

언뜻 봐도 자기만족이며 먹고, 살만한 시대에서의 여유 있는 사람들의 자유 활동으로 보이는데 아닌가요? 내가 살

기 바쁘고 피곤한데 어떻게 이웃을 보며 하늘을 보며 댓글을 다나요?

더욱이 그 참여에 있어 그 열렬함이라,,무섭기도 합니다.

 

일찍이 교회에서 그랬습니다.

내 교회발전,,부흥,, 우리 목사님만 최고,,

우리 교회가 아니었고 주님의 교회는 더욱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속에 있는 것으로 은연 중 숨 쉬며 자랑하고 나눕니다.

주변사람을 보십시오.

무엇을 자랑하는지,,무엇을 붙들려고 하는지,,아니라고 하지만 실상은 감추인 모습이 그 사람이고,, 하는 말이 그

생각이고 신앙입니다.

사람의 외면은 꾸미고, 염색하고, 치장해도 내면은 그렇지 못해 토하고 붙들고 있게 됩니다.

최근 동네의 가로등과 쓰레기통에 붙어 있는 작은 메모지들을 보았습니다.

내용은 복음의 핵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가까운 교회에 나가셔서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

나이든 여성스런 글씨체였습니다.

얼마나 좋은 신앙인지요? 흔한 교회 홍보지와는 달랐고,,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라는 글도 없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정성들여 쓰면서 기도했을 것이고,, 그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잃어버린 양이라면 이 말씀에서도 목자의 음성을 들을 줄 믿습니다.

여기에는 주님이 아버지와 하나됨이 먼저 있으셨습니다.

요10:30~31) 나와 아버지는 하나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나와 하나님은 하나니라”

여기서 ‘하나’ 가 남성이 아닌 중성으로,, ‘한사람’ 이 아니라 ‘하나의 것’을 의미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본질이나 본성에서는 하나이지만 동일한 인격체가 아님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아들’ 이 아니고 ‘나’, ‘나의 아버지’가 아니고 ‘아버지’ 로 되어 있는 것은 단수인 한 사람이 아니라 ‘한’ 복수인

본체임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주님과 하나님은 본질이나 본성에서는 동일하나 동일한 인격체가 아닌 하나의 것입니다.

그러나 양된 성도는 목자이신 주님과 본질과 본성과 다르지만 주를 믿어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요10: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본체가 다른 연합의 몸인데 이런 신비가 어디 있을까요?

흔히 생명의 신비, 우주의 신비가 신묘막측하다지만 우리 신앙의 신비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신앙에는 세상의 종교에서는 모방할 수 없는 위엄 있는 신비가 있습니다.

손을 얹은즉 병이 낫고, 귀신이 소리치며 나가고, 기도한대로 운수대통 하고, 이상한 꿈을 꾸는 신비가 아니라 주님의 본질을 알고 나 또한 주님과 연합된 본성을 아는 신비입니다.

요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결론) 주님은 다시 말씀하시고 입만 아프신지 유대인들을 떠나셨습니다.

요10:37~39) 만일 내가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거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

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그들

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훗날 사도요한은 주님의 양된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요1서2: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신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그러므로 나는 참으로 성도인가요? 주님의 양인가요?

주님의 솔로몬행각에서의 거니심을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도 그곳에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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