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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참이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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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5-06-22 08:21 조회 55회 댓글 0건

본문

성경에는 역사서가 있고 또 많은 기록도 있으나 국가나 개인의 실록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계시하신 성령 감동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그러므로 사복음서는 중복 같아도 입체적으로 주님을 계시했습니다.

 

1) 베다니에서

본문을 언뜻 보면 주님행보에 계절이나 시간의 간격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는 있습니다.

무교절에서 수전절로 지났꼬 또 유월절이 가까이 오고 있으니..

39~40절에서 몇 개월이 건너 뛴 것이고, 42절에서 11장1절 까지도 간격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간격은 상황도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앞서 유대인들이 주님을 에워싸고 나중에는 잡고자 하였으나 주님은 그 곳에서 벗어나 요단강 건너편 마을 베다니

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요1: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요10:40)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그러나 이 베다니는 나사로가 사는 마을 같아도 전혀 아닙니다.

요11: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같은 이름이지만 전혀 다른 마을로써 세례요한이 처음 세례를 베푼 곳이었습니다.

성경에는 같은 이름,, 같은 지명이 종종 등장해서 헷갈립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하는 데 곧 성령감동이 절대적인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유대인들의 사나움이 없어 보입니다.

되레 이상한 말도 돌았습니다.

요10: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신기합니다?! 지역만 바뀌었는데 인심도 순하고 예수님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습니다.

두 이유가 있습니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정치민심이 다른 것처럼 주님은 정치적이나 행정적으로 다른 고장으로 옮기신 것입니다.

실제 주님은 고향에서도 인정받지 못하셨습니다.

아니 실제는 주님이 만이 아닌 모든 선지자들이 다 그랬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죄 탓입니다.

 

그러나 여기는 달랐습니다.

그 큰 이유는 세례요한이 앞서 주님을 증거 했던 고장인 만큼 그 울림이 있는 곳이기에 주님의 말씀과 표적도 힘을

얻은 줄 믿습니다.

“많은 사람이 왔다가” 주님의 말씀과 표적을 보러 온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앞서 세례요한이 선포했던 진리의 말씀과 일치를 이루자 많이 믿게 된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외쳤던 말씀을 기억하시나요?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3:11~12)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론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

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풀기에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세례요한이 주님의 길을 앞서 예비하심이란 바로 이런 일들이었습니다.

나팔은 불고,, 불을 밝혔는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인공이신 주님을 위해,, 자신은 쇠해지고 주님은 흥해져야

되겠기에 이런 보람과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요10:42)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생각해보면 이외적인 기대와 성과와 보람에 주님과 제자들은 참 기뻐하셨을 줄 믿습니다.

 

2) 다 참입니다.

우리가 명심하며 적용할 바가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선지자이고 주님은 그리스도십니다.

세례요한은 사람이고 주님은 사람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세례요한은 진리를 선포했고 주님은 진리를 나타내시는데 함께하신 것입니다.

앞서 주님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고 세례요한은 주님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아버지의 의를 이루시기 위한 하나가 되어 합력된 방편이었습니다.

 

위 모습은 현대교회의 신앙에서도 꼭 필요한 모습니다.

교회끼리의 과도한 경쟁관계, 후원하고 받는 입장에서의 주종의 관계, 또 관계중심의 관계를 지양해야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성령이 하나이기 때문이고, 주님이 마지막 기도로 하나 되길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요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

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가족이든 단체든 국가든 그 어디나 하나 되지 못하면 무너집니다.

적은 언제나 흩어지게 하고, 가짜뉴스를 보내면서 교란하며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세상 지국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옛 부터 교회를 무너지게 했습니다.

가짜뉴스로 이단사이비를 만들어 내고,, 목회자나 성도를 영육으로 망가트리기 일 수입니다.

여기에 공격을 당하면 힘들고 아프기에 전투력을 잃습니다.

그러므로 단단해야 하고 튼튼해야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단단한 것은 서로의 은사를 인정하고 튼튼한 것은 결속력을 다져야 하는 일입니다.

좀 다른 나와 우리,, 좀 달라도 주님이 머리라면 합창하듯 한 진리, 한 복음을 증거 해야 되지 않을까요?

물론 그때와 방법은 하나님께 있지만 우리는 그 때를 바라보며 최선으로 꽃을 피워야 합니다.

우리가 얻는 열매의 궁극은 하나님께 영광이고 주님을 믿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식물들이 꽃피우고 열매 맺는 다큐를 보았습니다.

민들레는 바람에 꽃씨를 날렸습니다.

바람에 잘 흩날리도록 민들레 목이 길고 가드라란 것과 그 홑씨에 낙하산이 있는 지혜는 감탄되었습니다.

제주도의 문주란은 바닷가에 피는 화초인데 그 열매는 잎에 얹혀 흘러흘러 하천을 지나 바다로 들어갔고 또 먼 바

다로 나갔습니다.

어떤 식물은 나무에 붙어 사는 기생식물인데, 겨울이 되면 새 밥이 되어 그 몸을 통해서 다시 식물에 정착하며 뿌리

를 내렸습니다.

사는 지역에 따라 사는 생김도 사는 모습도 달랐지만 목적은 같았고 이 일에 하나였습니다.

꽃피우고 씨 맺는,, 그래서 번식이었고 번창했습니다.

동물도, 곤충도, 사람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물이 주께로부터 나오고, 주를 위하다가 주께로 돌아갑니다.

교회만 편 가르고 교회가 서로 다르다고 해서 원수 되면 안 됩니다.

 

오늘 나라사랑기도회에 설교자로 한맹교회를 갑니다.

공식적으로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나라사랑 기도회” 입니다.

이들이 이렇듯 기도회를 하는 일이 대견스러워 신문방송에다 귀뜸해 주었습니다.

누구는 이렇듯 오지랖을 부리는 일은 괜한 일처럼 말하지만 주님의 일에 협력하는 일입니다,

저들은 “목사님이 대신 홍보해 주였네요” 대신 홍보가 아니라 “홍보가 아니라 격려랍니다” 했습니다.

 

결론) 교회가 서로 모양과 은사가 달라도 함께 동역하므로 하나여야 합니다.

또 성도 개인적으로는 진리인 성경말씀과 그 말씀이 내 삶에서 증험될수록 노력해야합니다.

그 결과 언제 어디서든지 “ 주님은 참되십니다.” 라고 고백하며 증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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