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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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긴급 상황은 없어야 합니다만 그렇지 만도 않습니다.
주님도 모처럼 보람을 갖고 만족하시는 때에 긴급한 소식이 왔습니다.
요1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1) 사랑하는 자
주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은 나사로가족이었습니다.
물론 가족과 제자들도 계셨고, 나아가 모든 민족이 다 사랑의 대상이지만 왕래하시던 가족은 나사로네였습니다,
요11: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그런데 이 가족의 막내가 되는 나사로가 긴급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병들었나이다.”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는 뜻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죽어갑니다.” 하는 소식에 어떻게 반응할까요?
사랑할수록 놀람과 더불어 신속하게 달려가서 무엇인가 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애매한 말씀과 더불어 상태가 더 악화되길 기다리셨습니다.
요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
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요11: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의도적인 지체요, 의도적인 방치이기에 자칫 주님께 화날 상황이 된 것입니다.
요즘 읽은 책이 “의료사고를 일으키는 의사들” 입니다.
미국의 경우이지만 한 수간호사가 자신이 남편이 이상해서 입원한 병원의 담당주치의에게 증세를 말해주는데도 무
시당하다가 결국 남편이 죽는 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의료실수가 얼마나 많던지요? 과소하게 여기거나 과잉진료하거나,,자만하던지,,또는 패혈증 같은 깨끗하지 못한 환
경에서의 전염으로,,그 책 서론에는 나이팅게일의 경험도 있었습니다.
1차 대전 당시 총 맞아 죽는 병사 보다 전염으로 죽는 병사가 더 많았다니,, 의료실수 혹은 의료 사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일갈한 말이 기록되어있었습니다.
“병원이 지켜야 할 첫 번째 요건이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쩌면 이상한 원칙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와 같은 원칙을 정할 필요가 있다.”
– 프로렌스 나이팅게일, 1863년 -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의료체계가 완전 불확실한 시대에서라도 사랑하는 나사로를 방치하신 것이고, 그리고
마침내 죽었으니,, 그리고 난 후에 가자고 하셨으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도마가 빈축을 부렸습니다.
요11:13~16)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
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2) 하나님나라
하나님나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이 다스림은 확실한 실험결과와 통계가 있는 과학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능력과 지혜입니다.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국가와 얼마나 다른지요?
주권이 국민에게 있으면 말이 많아 시끄럽고 결정도 늦어 국가경쟁력도 속도가 늦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는 무엇이든 하나님주권이 좌지우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아들이지만 대사격으로써 언제나 예만 있고 아니라 함은 없습니다.
고전1:19) ~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
느니라
그러므로 지금 이 모든 말씀과 지체하심도 하나님 뜻을 따라 순종하신 일이요.
훗날 살리심도 그 뜻을 따라 되어 진 일인 줄 믿습니다.
만약 죽은 자의 살리심과 병든 자가 치유됨과 각종 이적들이 과학적이어야 한다면 모든 성경에서의 죽고 사는 일과
치유되는 일과 이적들은 다 한 두 패턴으로만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혹은 아비의 믿음으로, 상전의 믿음으로,,혹은 하나님사람의 치유로 되었으니,,나사로의 죽음과
부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죽고 사는 일이 요행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는 하나님 주권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사는 일을 한문으로 이라고, 사는 일을 이라고 하는데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 죽고 흥망성쇠로 사는 범사가 하나님의 주권과 명하심에 있는 덕분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나요? 이 진리이고 이 생명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을 택하셔서 그의 믿음으로 통하여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심이,,또 다윗을 통하여 만왕의 왕과 그 통치를 계
시하셨고, 이렇듯 죽은 나사로를 통해서 진정한 부활과 생명이고 부활이신 주님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언제나 사람들의 강팍한 죄성이고,, 예수님에 대한 불신성입니다.
이 나사로의 부활로 하나님은 물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있었지만, 더 사나워지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
의하는 사람들까지 있었습니다.
요11:45~46)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요11:53)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올해 6.25한국전쟁 75주년입니다.
전쟁1년 전에 우리나라 국호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여
국민투표를 할 때 여론은 대한민국 보다 조선인민공화국이 더 많았습니다.
또 주한미군철수를 놓고 반대냐 찬성이냐 할 때도 찬성이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전쟁이 일어났는데 유엔평화군 참전 결의가 있었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그리고 소련이 유엔상임이사국이었는데 단 하나의 국가도 반대하면 참전할 수 없었습니
다.
중국은 당시 장제스총독이 있던 대만이었기에 반대하지 않았지만 소련은 북한과 매우 우호적인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불참했던 것입니다.
무엇을 느끼나요? 벌레는 물론 개인과 국가의 흥망성쇠도 주님이 주관하십니다.
그런데도 주님을 안 믿는 일은 동서고금을 떠나서 하나님과 원수 되는 일이며 지옥행을 작정한 마귀의 활동인 것입
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
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곳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
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3) 영광을 위하여
이 큰 위엄과 주권의 하나님은 나사로의 병들었음을 방편으로 영광을 이룩하시는 것입니다.
요11: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부인이 남편의 옷 다림질을 잘 해주는 것은 남편이 단정하게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아내의 성실도 증명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하시고, 아들은 아버지영광을 위하시고, 성령님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궁극은
하나님나라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나타내지만 주님의 죽음과 부활은 승천과 재림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주 다스림으로 완성
됩니다.
무엇이든 목적과 목표가 확실할수록 좋습니다.
왜 사나요? 왜 믿나요? 왜 공부하나요? 왜 직장에 다니나요? 왜 돈을 벌려고 하나요?
자본주의 세상이기에 돈이 우선하고 있고 자본이 행복의 중요한 지표가 되었습니다.
청년들이 고액 년봉을 받기 위한 마지막 경계지표 지도가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남쪽으로는 과천, 판교, 서쪽으로는 마곡 등,,대체로 대기업들이 상주한 동네였습니다.
한편 청년들의 초교파 부흥회가 있었는데 선교사로 헌신한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이 두 모습은 소유냐 존재냐의 극단적인 모습입니다.
대기업을 다녀도 주님을 모르면 의미가 없고 선교사로만 다 헌신하면 어떨까요?
되레 예수님을 잘 믿는다면,,잘 따른다면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면서 삶을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그런데 왜 우리는 돈을 벌면 주님을 떠난다고 생각할까요?
왜 우리는 주님을 잘 믿는다면 꼭 선교사로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자기 직업과 삶의 형편 속에서 은사 따라 주님을 나타내면 됩니다.
곧 ‘일과 영성’이고 곧 ‘일과 소명’입니다.
명심합시다.
전 10:2)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 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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