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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낫고자 하느냐 > 설교말씀

네가 낫고자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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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5-02-02 09:12 조회 10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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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못할 말들이 있습니다.

“로또 1등 당첨번호를 알려 줍니다.” 또는 “좋은 땅이 싸게 나왔습니다.”

“투자하시면 높은 이자를 쳐드립니다.”

척,, 들어도 거짓말인데 그럼에도 잘 먹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거짓의 아비 마귀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서 그렇습니다.

이런 거짓말에 솔깃해서 따르고, 돈벌이에 쉼도 없이 혈안이라면 탐욕의 사람이고 정욕의 사람으로서 마귀의 사람

입니다.

 

1) 성도는,

성도는 주님이 기르시는 양인만큼 주의 음성을 듣고 따르고 주님은 목자라서 자신의 양을 알고 이름을 부르며 앞장

서십니다.

이 주님은 앞장만 서시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양을 기필코 찾으십니다.

요10:10) 도둑이 오는 것인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주님은 혈통과 지역을 초월한 분이시기에 성도도 주님의 안목으로 넓게 보아야 합니다.

땅에서 가까이 보면 네 것 내 것으로 구분되지만 조금 높이서 보면 민족이나 국가별로 구별되고, 아주 높으면 인류

는 하나가 되며 시기질투미움도 없이 됩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르면 큰 안목이 되는 이유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차별 없이 자기 양 곧 자기 백성을 찾으시는데 저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도는 구원함을 받았으나 주님의 양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차별 없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며 선교해야 합니다.

주님의 양이라면 목자의 음성을 들을 것이며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사마리아여인과 그 마을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요4:41~42)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라 하였더라

 

왕의 신하와 그 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요4: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그러나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들은 양이 아니기 때문인데 그러나 지금은 아니어도 나중에 돌아오는 이도 많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이요, 복음입니다.

철을 감별하는 데는 자석이 최고이듯이 주의 말씀을 전하면 판별이 됩니다.

요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함이요 진

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2) 베데스다연못

주님의 자기 양 찾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도 어떤 명절에 예루살렘 성문 곁의 연못가에서 자기 양을 부르셨습니다.

즐거운 명절 때이지만 즐겁지 못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경우 설에 외국인노동자들과 감옥과 요양원에 있는 자들이 대표적입니다.

대다수는 자기들을 위하는 때에 주님과 주님의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즐겁지 못한 사람들을 찾는데 성숙한 신앙인

것입니다.

 

베데스다연못은 간헐샘으로 양문 곁에 있었습니다.

“양문”,, 제물로 바쳐지는 양이 들어가는 성문으로 ‘희생’을 떠올립니다.

또 이 베데스다는 ‘은혜’을 뜻하고, 행각 다섯도 역시 ‘은혜’를 뜻하므로,,

“은혜위에 은혜” 가 됐는데 실제적으로는 주님의 은혜하고는 무관한 곳이었습니다.

요5: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마른 사람들이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마치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잔치 집처럼 유대교의 실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쁨이 없고, 은혜가 마른,, 사람만 있는,,시끄러움과 무질서와 온기가 없는 이 대표적입니다.

 

현대는 없을까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이 안 계시면 가정도,,교회도 똑같습니다.

지난 대선 때는 교회당을 찾은 특정 후보부부를 칭찬하는 대형교회목사가 있었고,

지난 주일에는 자기 교인인 국회의원부부를 박수로 높이는 대형교회목사도 있었습니다.

주일 예배시간에 그랬기에 예배라지만 예배가 아니고,

교회라기보다는 정당에 가까운 모습이었기에 목사는 정치인 되었습니다.

 

이런 곳에는 건물과 조직은 있을지라도 주님 치유와 구원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는 즐거움과 기쁨과 감사의 열매가 없어서입니다.

이 연못이 그랬습니다.

그저 물이 요동치는 기적만 바라는,,은혜에 멀어진 상태입니다.

요5: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더라

 

은혜가 충만함과 멀어짐과의 차이를 아시나요?

은혜가 충만하면 할수록 범사가 다 감사라서 눈물과 찬송이 많고,

“곳간에서 인심 난다” 는 말처럼 서로 간에 오해도 없고 용서는 많게 됩니다.

그 반대의 은혜가 없으면 기적만 바라고 여유가 없고 사나워 오해와 다툼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주요한 일은,,은혜가 없을수록 믿음 보단 신념이 더 강하게 작동된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은 주의 말씀의 기초라면,, 신념은 단체나 개인의 생각이나 마음이 기초입니다.

천사가 연못이 내려오면 연못물이 움직이는데 그때에 입수하면 어떤 병이라도 낫는다?,,

주의 말씀인가요? 시대적인 신념인가요? 아닌 환자들의 신념인가요?

확실한 것은,, 주님의 말씀도 아니고 믿음도 아니기에 신념일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믿음 없는 사람들이 모였고,,붙잡혀 허송세월하는 것입니다.

요5: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앞서 아들이 죽게 되자 절실한 심정으로 주님을 찾아온 왕의 신하와 얼마나 대조적인가요?

유감되게 여기에 모인 이들의 관심은 물이 움직이는 일,, 천사가 내려오는 일,,어떤 병이든 낫는 일,,먼저 내려가야

하는 일 등이었습니다.,

 

한 선배목사님은 하루에 두 세 번은 정치에 관한 글과 영상을 보내옵니다.

늘 정치가 주된 관심이었기에 교회정치에도 나섰고,, 나라정치에도 관심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다운 관심은 없는 듯해서 존경이 가시고 있습니다.

 

욥기를 보면 고난을 당하는 욥에게 와서 고난과 하나님을 논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최소한도 이들의 관심은 고난당한 친구였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끼리 논증하고 욥과 논증한 것이 욥기서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말은 다 맞는 말이라고 해도 하나님께는 틀린 말이기에,

하나님은 폭풍우 가운데 나타나셔서 저들의 입을 막으시고 책망하셨습니다.

고난과 죽음,,그리고 하나님은 논증의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고난당한 자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그 주변사람들은 말과 혀가 아닌 고난당한 자와 함께하는 연민이 믿음

이고 경건이고 사랑인 것임을 계시해주신 줄 믿습니다.

약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

니라

 

여기에 주님을 보십시오.

이상하게도 모여 있는 비참한 사람들을 다 찾으시거나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또 그들도 주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주님은 한사람을 찾아 연못을 오셨고 그 사람에게 말씀을 먼저 건네셨습니다.

그 사람도 주님께 반응했습니다,

이 사람은 38년 동안 누어서 조차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며,, 자신을 도와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절심함과 허

탈함은 어땠을까요?

요5:6~9)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

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

저 내려 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

를 들고 걸어 가니라

 

결론) 아무런 소망이 없던 이 환자에게 주님이 찾아주심으로 인생역전이 되었습니다.

‘양문’ 곁의,, ‘은혜’ 연못에 ‘은혜’라는 행각 다섯이라는 모든 의미가 주님이 이 38년 된 환자를 찾아주심으로 성취

된 줄 믿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환자에게 “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하심이 율법을 어겼다하여 유대교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훗날 십자가처형을 당하시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나의 구원은 주님의 전적인 은혜였지만 주님은 자신의 목숨을 희생시키신 값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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