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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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는 예수님의 중심사역지입니다.
가나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셨고 또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주님은 또 이 바닷가에서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이 넘는 군중을 먹이고 남는 이적을 이루신 것입니다.
1) 이적
지금껏 주님의 이 모든 이적의 목적이 무엇인가요?
과시인가요? 영업인가요? 로마에 대한 성토인가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잔칫집에 기쁨을 주시고, 아들의 생명을 살려주시고, 배고픈 군중에게 배부르도록 떡을 주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계시이기도 했습니다.
요6: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
더라
이런 이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무리는 점점 많아졌습니다.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있어서였습니다.
요6: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라
물론 주님의 말씀과 행실에서 트집을 잡으려는 무리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개의치 않으시고 특별히 바닷가라는 공개적 장소에서, 먹을 것을 가지시고, 그 많은 군중들에게
배부르게 먹이시고도 남았다는 일은, 놀라운 마술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주님의 구원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중들은 로마에게서 구원하실 구원자로 보았습니다.
요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더라
그러나 주님은 다시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떡으로 계시하셨습니다.
요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여기서 주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나타납니다.
주님은 배고픈 군중을 생각하셨고 저들의 영생을 생각하셨다면,,군중들은 당장의 떡과 자유였습니다.
또 주님은 이들에게 떡만이 아닌 장차 어떻게 하실지에 대한 답도 갖고 계셨는데,
요6:5~6)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시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
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
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그러나 빌립은 달랐습니다.
요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200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1 데나리온은 로마시대의 노동자 하루품삯이었습니다.
현대로 가늠하면 약 20만원,, 200데나리온은 약 4000만원치의 떡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둘 다 당장의 문제만 생각하고 있던 셈입니다,
2) 두 생각
이런 생각과 차이는 언제나 동일합니다.
사람들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이성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럴 것입니다.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나이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세상의 일은 이렇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일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한계적 존재라서 그렇고 주님을 몰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주님도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눅14:28~30) 누가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않겠느냐
여기에 잘못된 믿음이 작용하면 낭패를 겪고 두고두고 고생을 합니다.
그러므로 “실패를 두려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거침이 없으셨는데 인자가 아니시고 인생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그들이 배부르도록 원대로 주시다” 거저주신 것입니다.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도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
니에 찼더라”
우리는 주님의 이러한 덕에 지금도 기적을 경험하며 넉넉히 사는 은혜를 누립니다.
그렇다면 인생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주님의 일에 마음이 움직인다면 내 작은 도시락을 바치는 일이며, 그리고 주님께서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실
때,, 나 역시 앉는 일에 솔선수범하는 일입니다.
살아계시는 주님의 사역지는 갈릴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이며 오병이어의 이적은 지금도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하랑이의 재활비, 분유비, 소모품비가 매달 외벌이에는 큰 부담입니다.
그러나 하랑이 부모는 세브란스병원 지원쎈터에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더 요긴한 가정을 생각하면서 양보했던 것인데,,최근 병원에서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왜 요청하지 않았는지 물으면서 모 재단에서 후원했기에 지원가능 하도록 돕겠다면서 수입과 재산과 자동차와 직
업들을 조사한 후 몇 달분을 지원해주었으니 하랑이에게는 오병이어의 이적이었습니다.
또 저 남쪽바다 생일도에는 학원이 없답니다.
한 한의대생이 11년간 섬마을 선생이 되어 학생들을 지도했다니 이 일도 이적 아닐까요?
여기에 진리가 있습니다.
롬8:7~8) 육신에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
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내 생각이 육신의 생각인가 영의 생각인가를 아는 방식이 있습니다.
누구를 기쁘시게 하느냐에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오직 자신이고 세상이기에 그 결과는 사망이며,,영의 생각은 주님과 이웃이라서 생명과 평안인 것입
니다.
3) 어떻게
이 오병이어의 이적은 사복음에서 다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왜’ 이적이 있었나는 기록되었는데 ‘어떻게’ 이루어졌나는 기록이 없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떡을 나누어 주신 것만 기록되었을 뿐, 언제 어떻게 넘쳤는지 모릅니다.
비밀인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기록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은 오직 주님을 계시한 말씀이지 이적을 위한 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떡을 먹고도 주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했는데 어떻게 넘치게 하셨는가를 밝히신다면 노동을 거부하는
폭동도 생길 일입니다.
왜 천지창조를 하셨나? 왜 아브라함을 부르셨나? 왜 요셉을 애굽의 노예되게 하셨나? 왜 출애굽을 이루셨나? 왜 다
윗을 세우셨나? 왜 선지자들이 활동했나? 왜 이스라엘이 포로되어 갔나? 왜 하나님이 400년간 침묵하셨나? 왜 독
생자가 오셨나? 왜 말구유에 오셨나? 등,
이 모든 이유인 ‘왜’ 는 계시되어 있지만 ‘어떻게’는 역사와 과학이 증명해내는 중입니다.
인류 역사에 주님을 보고 이런 이적을 본 사람들은 소수였습니다.
당시의 국한된 지역에 살던 탓에 사도바울도 주님을 뵙질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주님과 복음은 이적 같은 능력으로 빛났습니다.
본 것 보다 더 한 성령 충만과 감동이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보아서 이해와 납득이 되는 믿음이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오직 성경과 성령으로 계시하신 구원에 이르는 참 믿음인줄 믿습니다.
갈릴리로 성지순례는 못 갔어도 오병이어를 주님께 드리는 믿음의 성도로 삽시다.
마중물과 부싯돌의 공통점은 작아도 큰일을 이루는데 있습니다.
믿음으로 물을 길어 올리고 믿음으로 부딪칠 때 주님의 이적이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시인인 선배가 산책길에 본 좋은 글이라며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당신의 하루가 별보다 빛나길” 곧 회신을 했습니다.
“이미 해같이 빛나고 있어요, 주님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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