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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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 답답해서 하는 말이 우이독경이라 합니다.
소귀에 경을 읽는다는 뜻인데 격이 다르면 이런 경우가 흔합니다.
1) 참 떡
주님을 만난 무리들이 그랬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나요?” 했던 질문은
“어떤 선한 행동들이어야 하나요?” 하는 복수적 뜻이었습니다.
주님은 명료하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일이다” 하시면서 단수적으로 말씀하셨고,
또 구원의 하나님을 (계속)믿는 것이라며 지속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또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요6:30~31)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그것도 구약의 만나를 회상하면서,
앞선 오병이어 이적에 만족치 못한 것이지만 여기에 숨겨진 뜻은 ‘적어도 메시야라면 하늘로부터 떡을 내려 먹게
하신 모세 보다 더 큰 이적을 보여야 됩니다’ 하는 불신이었습니다.
언제나 이적을 구하는 사람들은 점 점 더 큰 이적을 구합니다.
모든 자극을 찾는 사람들이 똑같은데 이는 소유에 집착하는 탐욕적인 성품이라서 그렇습니다.
왜 이런 일은 생기나요? 철학의 부재고 신앙인 경우 말씀의 부재인 탓입니다.
존재냐 소유냐의 명제 앞에서 소유의 가치를 선택할 경우 풍요가 있지만 개인주의로 흘러가고 풍성함에도 늘 만족
함이 없기에,,소유를 찾아다니다가 결국 낚시에 걸리게 됩니다.
“와 보라” 며 이적이 있는 것 같이 선동하는 곳은 신앙이든 모임이든 갈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곳일수록 아무 것도 없으며 주기는커녕 되레 강도짓을 해서 당하기 쉽습니다.
이단 사이비들이 여기에 속하고 불량 정치도 여기에 속합니다.
그러나 존재의 가치를 추구하는 곳에는 언제나 만족이 있기에 온유와 겸손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존재적 신앙은 “와 보라”가 아닙니다.
되레 주님처럼 낮고 천한 곳을 마다하지 찾아가는데 얼마나 다른지요?
또 나누는데 귀한 것을 나눕니다.
그러므로 조금만 관찰하면 이런 모양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2) 생명의 떡
주님은 큰 이적을 구하는 이들에게 바른 지적을 하시면서 참 떡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요6:32~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
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바른 지적이 무엇인가요? 무지를 깨우쳐주신 것입니다.
* 하늘에서 떡이 내려 준 것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된 떡을 주신다.
그 이유는 모세의 떡은 영양은 주었지만 생명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대견하게도 이때 무리들은 새로운 고백을 했습니다.
요6: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전에는 주님께 “랍비여” 했었는데 이제는 “주님” 이라고 부르는 변화가 왔습니다.
성경은 이렇듯 세세한 변화까지 기록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과연 믿음인가요? 아닙니다, 떡에 대한 호기심과 소유에 대한 탐심이었습니다.
요6: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그 불신은 수군거림으로까지 이어졌으니 주님께는 여전히 우이독경이었던 것입니다.
요6: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수군거리지 말라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믿음은 결코 보거나 만져서가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어야 합니다.
요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
라
그러므로 또 주님이 반복계시를 하십니다.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생명의 떡은 겉이 볼품없는 사람의 모양이었으나 그 속에 생명이 들었고,,그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해져 있는 것입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와 독생자의 영광이
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에는 주님의 “ 나는 ~이다 ” 가 계속됩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길이
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포도나무다.
역시 “나”는 하나님의 존재적 표현으로 가장 권위 있는 주님의 계시이며 확실성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나는 나다” 이처럼 믿어야 하고 역시 믿음은 증명해야 합니다.
떡이든 빵이든 고난을 통해서 가루가 되어 떡도 되고 빵도 됩니다.
그러나 떡인 경우 누룩이 없기에 죄 없으신 주님을 계시하는데 빵보다 떡이 제격입니다.
요6:48~50)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
서 내려오는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옛 만나도 주님의 모형이었고, 오병이어의 떡도 주님의 모형이었던 것입니다.
요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떡은 곧 세
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이런 떡이 있나요? 세상에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하나님 보증하신, 하나님 주시는 떡인 줄 믿습니다.
이 떡의 효능이 있습니다.
이미 성도에게서 진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6:53~5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
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는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주님의 대속의 희생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찢기신 살,, 흘리신 보혈,,남의 아닌 나의 대속으로 받아드리고 고백하며 성찬식으로 기념하며 삶으로 증명해야 합
니다.
계속된 믿음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는 성화가 내면에서부터 삶의 열매로 맺혀집니다.
지난 12월26일에 돌아가신 하형록회장은 나환자촌에서 목회하시는 아버지 덕에 어릴 때는 문둥이라는 놀림도 받고
자랐습니다.
그 후 가족이 이민을 갔기에 미국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기업에서 빠른 임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30대 중반에 심장이상으로 쓰러졌고 병원에서 심장이식 대기를 받으면서 5개월 동안 성경만 읽었습니다.
이때 깨달은 진리가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였습니다.
마침내 이식할 심장이 나타났는데 옆방의 여성이 자신보다 급하기에 심장을 양보했습니다.
놀란 의사들은 최선을 다해 살려놓았고 다시 심장이 와서 수술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그의 사업은 이웃에게 나누는 목적이었기에 회사명도 “페이버(favour)”이었습니다.
우리의 살과 피로도 이웃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는 못 살리지만 주님의 생명은 영원을 주십니다.
이 떡은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값없이 먹습니다.
이 떡을 먹으면 배부름이 있어 세상사에는 자족함이 있고 천국에는 사모함이 있습니다,
또한 죽음과 두려움을 이기고 천국소망으로 즐거움을 누립니다.
며칠 전 가족 예배 후 딸이 제게 물었습니다.
“아빠묘비에는 무슨 말씀을 기록할 것인가요?”
순간 당황했지만 곧 마음에 있던 말인데 “주님의 은혜로 잘 살았습니다.” 였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식사 중에 또 물었습니다.
“아빠장례식은 누가 집례하나요?” 역시 당황했지만 나보다 젊은 목사님이어야 해서,,
“응,, * ** 목사님께 부탁해 놓을게,,” 했습니다.
결론) 이 분위기를 보십시오.
죽음이 부정하다거나 두렵거나 하는 모습이 없는 것은 주님의 영생의 떡 힘인 줄 믿습니다.
이 생명의 떡을 계속 계속 먹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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