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막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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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민족에게는 하나님이 내리신 3대 명절이 축제일로 주어졌습니다.
어린양을 희생하여 이룩한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
광야생활을 회상하며 광야에서 지켜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상기하는 초막절,
농사지어 추수하며 저장하는 수장절 등,
1) 명절의 의미
이런 명절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고생했음을 상기하라가 아니라 안식일을 주신 만큼 쉬어라하신 쉼표입니다.
이 쉼을 통해서 가족은 물로 이웃들도 돌보며 하나님께도 감사하라는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추석을 생각하면 이런 명절준비와 분위기가 알만 합니다.
또 남자들은 이 때에 예루살렘성전을 찾기에 인사인해를 이룸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아기예수님도 이 초막절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유럽의 기독교가 국교화 되면서 “아모르데이 AmorDei” 라는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신앙이 되었습니니다.
그 결과 교회는 성장했는데 가족과 함께 하고, 이웃과 함께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빠지게 되므로 하나님중심 신앙
도 화석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기서 니체가 “신은 죽었다” 하면서 반기를 들며 아모르(사랑) 파티(운명)를 외친 것입니다.
실제 신의 존재를 부정한 말이 아니고 운명론적인 말도 아닙니다.
하나님만 의존하고 내세의 천국만 사모하지 말고 현재도 보고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는 지금의 운명도 받아드리
며 개척하자는 역설적인 믿음 고백인 것입니다.
비슷하게는 우리나라가 80년대에 산업화가 일어났습니다.
경제부흥도 함께 왔고 빈부의 차이도 따라왔으며 온갖 차별이 뒤를 이었습니다.
이 탓에 이웃이 없고, 정이 없고, 돈신만 바라보는 돈신이 부흥되어 지금 것 온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떤가요?
가정의 해체, 혼자의 빈곤, 이웃과의 단절, 정신이상자가 나왔는데 풍요라는 그 이면의 피폐함입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도시에는 공원을 꼭 만들어 긴장완화와 쉼을 얻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병원이 들어서기 때문입니다.
도시가 공원이라면 집은 정원이고, 아파트는 베란다이며, 내 영혼은 주님이 주시는 생수인 것입니다.
쉼과 여유, 아님 틈새가 필요합니다.
자연 잇몸과 이에는 유격이 있기에 흔들려도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치나 인공적인 기계나 건축에는 유격이 없기에 망가지거나 부서질 뿐입니다.
성과 중심의 사회는 이 여유가 없어 사납고 인정이 없어 공격적이 됩니다.
그러나 주를 믿는 신앙은 주님과의 안식으로 가족과 가정, 사회와 이웃과 하나님이 하나가 되는 울타리를 얻는 희
망적인 일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다른 아무 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그러므로 쉬라고 할 때는 쉬어야하고 주일도 명절도 그런 의미입니다.
2) 초막절의 주님모습
초막절에 대한 주님의 모습이 소개되었습니다.
요7:1)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시기적으로 유대인이 죽이고자 하는 일도 있었지만 주님은 가만히 계셨습니다.
요7:8~9)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
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그 다음에는 올라가시되 은밀히 가셨습니다.
요7:10)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그래서 사람들이 찾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르치셨습니다.
요7: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이때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움이었습니다.
요7:15)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든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그럼에도 주님은 계속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요7: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마침내 명절 끝 날에 외치셨습니다.
요6: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로 와서 마
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모든 명절은 보통 1주일인데 마지막 날은 성전에서 의식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하심은 성전에서 ‘물 붓기 의식’ 이 있었고, 또 성전에서 거대한
촛대를 밝히는 ‘빛의 축제도’ 있었기에 “나는 세상의 빛이라” 하심과 연관이 있습니다.
주님께 초막절은 이웃과 함께하는 축제일이 아니라 전도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서 잠잠하셨던 일은 준비였으며 명절 중간과 마지막 날에 가르치시고 외치셨던 일은 주님 심령의 폭발
인 전도불로 믿습니다.
제자들은 어디 있나요?
왜 제자들을 시키지 않으셨나요? 전도는 주님이 하시는 주의 일이셨던 것입니다.
요즘 좌파냐 우퍄냐 로 갈라치기 많습니다.
그 감별이유도 많습니다.
성도는 주님처럼 영혼구원에 마음 써야 주님편인 줄 믿습니다.
특히 성도는 얼마나 영혼구원에 힘쓰냐로 증명됩니다.
사회구원이 언뜻 보면 영혼구원 같지만 주님과 다른 모습입니다.
며칠 전 목사님들이 번개팅을 했었는데 자연 이런 말이 오고 갔었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목사가 얼마나 전도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느냐에 목사다움을 인정했습니다.
3) 초막절의 의미
초막절은 주님의 모형입니다.
그래서 초막절에 세상에 오신 주님이 말구유라는 초막(숫곳)에 태어나셨고, 유대인들이 죽이려하는 계략을 아시고
도 참으시고 은밀히 올라가셔서 자신을 외치며 드러내신 일입니다.
단순히 광야의 초막살이의 궁핍이나 비참함의 고생을 기억하라가 아닙니다.
과거적으로는, 그 광야에서의 하나님은혜와 보호하심을 기념하라 이고,
레23:42~43) 너희는 이레 동안에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
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현재적으로는, 수확의 기쁨을 감사하며 가족과 이웃들과 즐기고 살피라는 것이고,
신16:13~14)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
워하되
미래적으로는, 메시야왕국의 완성을 소망하는 일입니다.
스가랴14: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결론) 지금은 이런 명절을 지키기보다는 의미를 붙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으로 대체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사랑할 때입니다.
그 전도가 하나님사랑의 최고요, 이웃사랑의 최고인 줄 믿어야 합니다.
경북도에 큰 산불이 났습니다.
이런 재난에도 성도는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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