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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합당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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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6-08-09 07:06 조회 2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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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보면 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감격적으로 만난 이후 그의 삶은 복음적인 삶이었습니다.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도 선교했고, 제자들을 양육했으며, 감옥에서도 이런 일들을 편지로 계속했는데 곧 바

울 서신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로마서를 비롯한 많은 서신이 성경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1) 사람

사람은 영육의 연합체입니다.

영적인 부분은 하나님과 관계적인 영역이라면 육적인 부분은 세상과 관계적인 영역입니다.

성도가 거듭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 살아났고,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이 화목하게 회복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영의 생각을 합니다.

그 생각의 최고는 하나님영광이어서 온통 관심과 삶의 목적과 목표가 하나님과 하나님나라에 맞추어집니다.

바울의 서신이 많습니다.

그의 글 중에서 노년의 걱정이나, 건강이나, 아님 당장의 먹고사는 일을 크게 여겨 두려워하고, 준비 없음을 한탄하

며 걱정하는 일이 있었나요? 없습니다.

도리어 반대적인 고백만 있습니다.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또 죽음을 인지하면서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빌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

께 기뻐하리니

그의 삶은 주님을 만나 이후 로마에서 순교하기 까지 일관되었습니다.

성령하나님이 그와 동행하신 덕이며, 그 역시 성령님께 순종하면서 좁은 길을 넓게 여기며 순례자의 길을 달려갔던

결과인 줄 믿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그가 처음으로 전도하여 세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빌립보교회에게 자기 심장의 피를 찍어 뜨거운 말씀을 전했습니다.

“너희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영의 생각을 갖는 성도라면 언제나 당연할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당연할 말씀이라도 당연할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영의 사람이라지만 성숙하지 못하면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여러 단계를 거쳐서 성장하고 성숙해집니다.

미성년자에게 정의감과 애국심을 심어주어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장성하게 되면 효심도 생기고,,이웃도 생각하며, 나라 걱정도 하게 되는 이치처럼,, 영의 생각도 계

속 자라나야 합니다.

이렇듯 미숙한 영의 사람들은 과거 육신의 생각으로 살았던 삶에 아직 길들여 있기에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가 어려워 더욱 애쓰고 힘써야만 됩니다.

야구 선수가 골프 선수가 되기 어려운 것은 근육이 반대라서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한 근육을 반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의지와 시간이 걸리는 이치입니다,

 

2) 오직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

“ ~ 너희가 한 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소극적으로는, 주일에 교회 가는 일로써 신앙 생활 잘 한다고 자만하지 말고,

일상의 모든 날 속에서 복음의 신앙을 실천하며 “한마음으로 서서,,살아라”입니다.

그러므로 주일만 예배일이라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모든 요일이 주님의 날이고 예배일이기 때문에 신앙과 삶은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는, 복음이 복음으로써 위력을 나타내고 영광이 되도록 협력하라 입니다.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곧 그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일인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또 내 교회만 주님의 몸이다,,이 역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단 사이비를 뺀 모든 교회를 우리 교회로 생각해서 기도하며,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이 영화롭게 되기 위해

서 협력해야 합니다.

 

지금껏 내가 오지랖을 부리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 단체에서 임원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또 방송이나 신문에서 내 이름과 얼굴이 실리는 일은 더욱 아닙니다.

오직 복음을 위해서 협력하는 일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복음에 합당한 사역이나 인물이라면 방송이나 신문이나 교회에 추천합니다.

며칠 전에도 백령도와 울릉도에 계신 목사님들을 추천했습니다.

모르는 목사님들이지만 그들에게 격려가 필요할 듯해서 그랬습니다.

여기에 무슨 떡이 생겨서가 아니라 때론 떡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래전에 “오직 너희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가 작용했기에 협력하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오직 주의 생명을 지닌 성도된 나입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우리인,, 나에게만 주어진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고, 천사도 흠모하는 일이지만, 우리가 안 하면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대적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교회와 복음을 훼손하는 이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빌1:28) ~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 척박한 환경에서 성도가 가만히 있는데 복음이 저절로 합당하게 전파되고 주님이 영화롭게 될 일은 없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연대를 합니다.

세상이 주님을 환영한 적이 있나요?

탄생과,,공생애와 죽으심과 부활에서도,,지지와 환영을 받지 못하셨고 제자들도 떠났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세상의 정치가 그렇고, 인심이 그렇고, 문화가 그렇습니다.

앞으로 송금하는 해외 선교비에 세금을 과세한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가요?

연대보다는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다른 복음을 전파하지는 않나요?

유감되게,, 있습니다.

자기 영광이나 승리를 구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영으로 난 것의 언제나 영생이라면 육으로 난 것은 언제나 육이기에 사망에 이릅니다.

여기에 결국은 복음과 복음의 합당한 생활이 거룩한 경계가 되는 줄 믿으십시오.

빌1:28) ~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옛 우리나라에는 호랑이가 많이 살았는데 실제는 호랑이 보다 범이 많았습니다.

호랑이와 범의 차이는 무늬로써 호랑이는 줄무늬인 반면 범은 점입니다

다 같은 용례로 불리었지만 범은 표범이기에 나무를 탔어도 호랑이는 못 탔습니다.

 

복음의 합당한 생활은 이렇듯 주를 믿는 신앙이라도 다릅니다.

다수는 믿노라 하면서 세상 중심이 있고, 소수는 분명한 복음 중심이 있습니다.

호랑이와 범이 비슷해도 무늬 차이가 구별을 주듯이,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은 애당초 중심이 달라 생각부터 생활까지 다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영생과 영벌이 갈라집니다.

 

무엇이 중심인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몸에 딱 맞는 옷과 빌려온 남의 옷을 입은 차이처럼,,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복음적일수록 자연스럽습니다.

영의 생각이라는 새 성품으로 맞추어졌고 자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은 어설프기 그지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으로 영의 일을 하려니 흉내는 내는데 모양만 있고 능력은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증거도 없고 재미도 없습니다.

 

결론) 여러분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고 계신가요?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면 이미 영생입니다.

영생은 고난도 막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

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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