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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6-09-13 08:05 조회 2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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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사람들은 사람을 잘 모릅니다.

함께 사는 가족도 잘 모르고 자기 자신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는 때가 있는데,, 그가 고난 받을 때입니다.

 

1) 감옥에서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난 후에 많은 고난을 당했고 마침내 순교도 당한 사도였습니다.

그의 열정은 지금도 로마의 감옥에서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설교 편지를 보냈습니다.

엡3: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감옥은 동서고금을 초월해서 감옥 밖 생활보다 열악하고, 현대보다 옛날이 더 어려운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올 여름 얼마나 더웠나요?

덥다 보니 감옥에 있는 노약자들을 위해 에어컨을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또 조선시대 감옥은 어땠을까요?

이순신 장군이 감옥생활의 후유증으로 훗날 고생한 것을 난중일기에서 보았습니다.

춘향전의 춘향이가 목에 무거운 칼을 쓰고 생활했고, 유배 가는 죄인은 자기가 유배 가는 경비를 조달해야 했야 했

으니,,이순신장군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옛날 로마의 감옥 생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또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만큼, 에베소교회가 자신의 석방을 위해서 기도하고, 탄원해 주고, 돌봐주길 원한

다고 요청할 수 있었을 텐데,, 전혀 그런 내색도 요청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엡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

느니라

비록 감옥에 갇힌 사도바울일지라도 이미 하나님의 능력으로 3층 하늘을 다녀온 영의 사람인 만큼, 그 속에는 주님

의 은혜가 풍성하게 깃들었기에 세상을 이길 힘이 된 줄 믿습니다.

 

가까운 친구 부인이 말기 암으로 고통 중에 연명하고 있습니다.

친구가 곁에서 간병하고 집에서 연명하지만 통증을 억제하는 몰핀이 절대적이랍니다,

대체로 고통당하는 이들에게는 몰핀이 특효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위에서 고통 중에 계실 때 누군가가 해면에 젖신 신포주를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함은 일종의 진정제

라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또한 생활의 고난에서는 과거의 좋은 회상과 미래의 좋을 소망도 몰핀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상상의 몰핀은 한계가 있어 고난이 심하면 당장의 몰핀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육신의 사람에게는 쾌락도 몰핀이 되어 “먹자 마시자” 하여 고난을 잊는 것입니다.

이 쾌락의 특징은 술 취함과 방탕이기에 수혜자나 공급자가 함께 망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사람들은 달라서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이 때 주님이 주시는 믿음 소망 사랑이 하늘의 몰핀이 되는 줄 믿습니다,

사도바울이 감옥에서 지금 기쁨과 감사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묘약을 참 지식으로 에베소 교회에 전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멈출 수 없는 참지식이기 때문입니다.

 

2) 참 지식

언제나 영의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하고 말합니다.

영적인 생각이 인품이고 삶이기 때문입니다.

꿈도 그처럼 꿉니다.

 

한 영감이 27살에 미국으로 이민 가서 오래도록 살다가 왔습니다.

말에는 그쪽 발음이 나왔고 삶의 방식도 미국 스타일이었습니다,

내가 꿈속에서는 어땠느냐 하며 물었더니,,꿈속에서는 한국을 꿈꾸었답니다.

결국 시민권을 반납하고 다시 한국인으로 환국한 것입니다.

 

성도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이고 성품은 하나님과 같은 신성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땅의 일에 집중하면 할수록 영의 사람인 속사람이 행복하지 못합니다.

지금 감옥에서의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감옥 밖의 에베소성도의 믿음과 기도를 생각하며 기도하는데 감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감옥 안에서 이런 형편을 듣고 부러움도, 질투도, 아닌 되레 감사였다니,,육의 사람은 몰라도 영의 사람은 알 수 있

는 아주 흔한 일입니다,

보십시오, 그들을 축복하면서 그들이 더욱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엡1:16~17)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

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의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세상에 많은 목사와 선교사가 계십니다.

다 목회한다 하고, 다 선교한다 하고, 다 복음을 전파한다고 하고, 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고난 중에 하나님을 나타내며, 맡은 양 무리에게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하나님을 외치는 참된 주의

종이 얼마나 될까요?

하나님을 믿었으면 주님의 성육신을 믿어야 하고, 우리의 대속으로 장사되심과 부활을 믿었으면 승천도 믿어야 하

고, 주님의 하나님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심도 믿어야 합니다.나아가 주님 재림도 믿고, 열 처녀 비유가

운데 등불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는 주님으로부터 거부당함을 두렵게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합니다.

 

노인 요양원과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을 목사님들이 운영합니다.

그러나 주변의 얘기는 일반인들이 운영하는 바와 다름이 없다고 합니다.


지난주일 예배 후 설교를 복기하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일이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일인데,

그래서 마이너스 마이너스되는 일이라서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는데,,과연 오늘날의 현상이 여기에 걸 맞는 현상인

가 하면서,,어떤가요?


3) 잘못된 지식

잘못된 지식이 거짓 믿음이 됩니다.

내비 따라 고생하고 엉뚱한 길로 간적이 있나요?

*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믿어져서 믿게 되는 줄 알아야 합니다.

의지적 결단과 고백은 있어도 내가 아닌 성령님의 감화 감동이기에 자랑할 바가 없습니다,

엡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의 “안다”는 경험적인 앎입니다.

 

또 “여호와는 나의목자” 와 “나의목자는 여호와”의 차이를 아시나요?

작은 차이의 고백이라지만 실제는 큰 차이의 신앙고백입니다.

교과서적인 믿음의 신앙에서는 나올 수 없지만 경험적인 신앙에서는 이 믿음이 고백됩니다.

 

또 다른 경험적인 고백인 시편 127:1절도 함께 암송해 봅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

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되도다 ”

주어가 “ 여호와께서” 인데,

실제 삶에서는 어떤가요? “나” 또는 “우리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누구든 아는 만큼 하나님을 말씀하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며 극진한 예물을 바치

며 경배하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화목하기를 힘씁니다.

시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맛보아 알지어다” 이 경험과 지식이 풍성해야 합니다.

 

최근 한국 교회에 유감된 일이 있습니다.

교회에 젊은이들이 감소할 때 인구 감소의 한 부분적인 일로 치부했습니다.

그런데 청년들이 증가하는 교회가 있는데 이유가 간단했습니다.

주님을 만난 간증이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설교가 하나님과 복음대신 교양, 도덕, 위로 등에 치우친 탓은 아닐까요?또 설교가 안정된 목회,

평안한 교회를 지향하면서 성도를 고난에서 일어서는 용사로 만들기보다는, 놀라고 도망치는 어린이 집 수준이 된

탓은 없을까요?

힘들고 어렵다 하면 할수록 위로랍시고 사탕을 입에 물려주었던 경향들이 폐해라고 믿습니다.

 

결론) 여러분은 어떤 성도인가요?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알기를 기뻐하나요?

아님 내가 만든 내 신앙테두리에서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머물기를 기뻐하나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영생이라 하셨으니 하나님을 갈망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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