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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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공기, 음식 등은 생명이 존재하는데 절대 조건입니다.
그리고 믿음, 소망, 사랑은 사람이 사는데 절대 필요입니다.
1) 믿음, 소망, 사랑
믿음은 어떤 모습인가요? 신앙에서는 인정, 의지, 신뢰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구주에 대한 믿음, 성경에 대한 믿음, 부활과 영생에 대한 믿음 등,
이때의 믿음은 성령이 주시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구원에 이루게 합니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또 일상에서의 신용, 추구, 소유 등의 모습은 진리에 대한 믿음,.정의에 대한 믿음, 법에 대한 믿음, 지도자에 대한
믿음, 문서에 대한 믿음, 돈에 대한 믿음, 미래에 대한 믿음, 약속에 대한 믿음 등으로 나타납니다.
보이지 않지만 세상에 이런 믿음이 없으면 전쟁이 아니더라도 무너지기 쉽상입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에서 소망이 만들어지고, 믿음이 없으면 두려움이 옵니다.
부모가 자식들에 대한 기대가 믿음으로 작용할 때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청년들이 군 생활이 힘들어도 역시 참는
것은 전역이라는 소망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고난 중에도 바라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 소망, 사랑을 건축물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존재나 관계의 기초석이고, 소망은 기둥이 되고, 사랑은 믿음과 소망을 아름답게 만드는 인테리어입니다.
그러나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심은, 실제는 사랑이 믿음소망의 근원이라는 의미입니다,
왜 그런가요? 사랑만큼은 하나님속성이기에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사랑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신 사랑으로 내리 사랑하심으로 우리에게도 미쳤습니다.
이 덕에 사랑이 미치는 곳에는 “허다한 허물을 덮느니라” 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어디서나 사랑이 미치는 곳에는 믿음의 활기와 소망의 인내가 있습니다.
“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꽃피고 너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 시인)
무엇보다 사랑은 희생적입니다.
믿음이나 소망이 없는 동물에게도 모성애와 부성애가 작용하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특별히 성도는 사랑하기 위한 존재들인 줄 믿어야 합니다.
성도에게서 사랑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고, 삶이고, 인품이고, 구원의 열매가 됩니다.
요1서3:17~18)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믿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사랑하는 자들아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2) 그중에 제일은
사랑은 아름답지만, 때론 깃털보다 가볍고 바위보다 무겁기도 합니다.
말로 하는 사랑은 가볍고,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은 바위보다 무겁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사랑으로 하나님계명을 지키는 일은 무겁진 않지만, 가장 빛나는 사랑입니다.
요1서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하는 사랑은 어떨까요? 정금같이 값나는 사랑이고, 이웃 간의 사랑은 보석 같은 사랑될 줄 믿
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 사랑을 시대를 아는 척도계로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말세일수록 사랑이 메마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특징을 아시나요?
사랑 아닌 탐욕이, 사랑처럼 가장해서 주변을 망가트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탐욕이고 우상숭배이고, 자기만 사랑하는 것, 역시 육신의 정욕인데,,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강서구 모 동네에서 안타까운 일이 생겼습니다.
탈북민들의 대안학교인 여명학교가 그 동네의 빈 학교에 들어와 수년간 생활했는데,,그만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디든 갈만한 곳 없어 슬픈 처지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그들을 받아주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어른들의 이기심이 이런 일을 만든 것입니다.
우리들의 아이들인데,, 자기들만 생각한 나머지,,이런 차별이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네에서 그들을 환영하는 아주 작은 목소리나 몸짓도 있음이,, 사랑입니다.
어디든 사랑이 없으면 잔인해집니다.
재벌부부가 이혼하면서 돈 때문에 법정 다툼하는 게 바로 이런 사랑의 실종인데,, 무섭습니다.
그래서 마른 떡 먹고도 움막에서 화목하게 사는 사랑이 위대함을,, 성경은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사람이 만들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받았으면 살아야하는데,,그렇지 못해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세상주의로 받을 사랑에만 익숙해진 탓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훈련은 주는 사랑을 터득하는 주님중심인 줄 믿습니다.
3) 제자도
주님은 세상에 안 계셔도 주님이 남기신 제자도는 여전합니다.
요13:34~35)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언제나 교회 안에는 두부류가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교인과 믿고 따르는 주님의 제자,
교인은 구주를 믿는 대다수의 성도인데 마치 병속에 담긴 요쿠르트 같은 신앙인입니다.
은혜와 평안에 만족하며 때론 식후에 식당에서 주는 요쿠르트처럼 이웃에게 서비스도 합니다.
반면 주님의 제자는 유산균 같은 소수의 신앙인입니다.
병에 담긴 완제품이 아니라 스스로 약동하는 유산균으로 주변을 발효시켜 결국은 새 유산균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
습니다.
이 두 부류의 분별은 간단합니다.
“받을 사랑을 계수하냐?” 아님 “주는 사랑을 계수하냐?”
주님을 믿는답시고 교인에서만 멈추지 않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될 때 주님을 닮는 만큼 “서로 사랑”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제자훈련을 마쳐서가 아니고, 성경을 많이 읽고 알아서가 아닙니다.
사랑이 생활되고 인격화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제자인가요?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1회용 요쿠르트 보담은, 유산균이 되어 믿음, 소망, 사랑을 낳는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가롯 유다는 주님의 제자라지만, 자기사랑과 돈 사랑으로 은 30냥에 주님을 팔아 인류역사상 배신자로 낙인 찍혔습
니다.
이는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없던 탓입니다.
사도요한은 어떤가요?
믿음, 소망, 사랑이 있어 주님의 제자 중 가장 어린 나이였지만, 사랑받는 제자였기에 주님을 믿고, 부활의 소망과
재림을 사모했습니다.
또 주님 돌아가시는 십자가 밑에 있었고, 주님의 부탁대로 주님의 모친 마리아를, 죽기까지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요한복음으로써 주님을 하나님이라 선포했고, 유배살이 섬에서 계시 받은 천국과 장차 되어 질 일들
을 주님의 부탁으로 기록했으니 사랑으로 무장된 참 제자의 실천입니다,
결론) 사랑은 이처럼 위대합니다.
하나님나라는 이런 사랑으로 마주 드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제자답게 서로 사랑하여 주님의 의를 이룩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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