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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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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6-10-04 08:46 조회 1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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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유명연예인이 이상한 성경교리를 가르친 일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교계는 그의 이단성을 지적하고, 교회가 교리를 잘 가르쳐야 한다는 지침도 발표했습니다.

때마침 모 신문은 기독교인은 소수 증가한데 비해, 교회들은 코로나후유증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 교인이 감소한 반

면, 가나안성도는 여전히 증가한다는 통계를 내놨습니다,

 

1) 자기 교만

이 이상한 현상이 무엇 때문이냐? 아직 정확한 이유를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교인들이 교회에 엮이길 싫어해서 직분 맡는 일도 사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 시대가 달라져 혼자서도 신앙생활 할 수 있는 여러 콘텐츠 등이 있음도 무관하지 않다고 보았고, 목회자나 교회

가 이 가나안성도들을 담을 용량이 부족할 수 있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답을 주고 있습니다,

딤후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이 중심에는 자기가 “똑똑하다” 가 있습니다.

이 탓에 내가 옳고,, 저들은 틀리다 인데 일종의 영적교만이고 또 어리석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식’ 보다는 “내식으로 한다.” 는 식이 생긴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아셔야합니다.

장작불은 혼자서는 곧 꺼져도 함께 아궁이에서 타는 장작불은 하얀 재가 된다는 사실을,,

그래서 사도도 주를 믿는 공동체를 주님의 몸된 교회로 불렀고 열심을 강조했습니다.

골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딛3:14)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

기를 배우게 하라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자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엡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오늘의 다윗은 아다시피 소년 목동이 전쟁에서 이기고 이겨 이스라엘의 왕이 된 인물입니다.

그 과정에서 3번이나 왕으로 등극해야 했으니 자수성가형 왕입니다.

첫 번 째는 자기 지파에서, 두 번 째는 남유다에서, 그리고 남과 북이 통일된 국가에서,

삼하5:17)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불레셋 사람들이 듣고 불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들고 요새로 나가니라

 

다윗은 왕위계승이나 선거를 통해 왕이 아닌 죽고 사는 전쟁에서 언제나 살았기에 왕이 되었으니,,

지금도 보십시오,

왕이 되자마자 또 불레셋이 전쟁을 일으켜 왕인 다윗은 요새로 나가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두 가지로 함축되는데 여기에 왕된 비결이 있습니다,

첫째는 다윗은 날마다 최선으로 살았다 곧 열심히 살았다 입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악을 따르는 자와 게으른 자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분주한 전쟁 통에서도 시편을 지어 찬양을 드렸고, 쉬지 않고 기도했으니 부지런함이 최상인 것

입니다.

 

둘째는, 그의 많은 전쟁 상황은 지혜가 필요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참모들보다 목자 되신 하나님께 갈 바와 할 바를 물었습니다,

이 모습이 전쟁과 인생이 승리된 비결입니다.

삼하5: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이런 일은 이삭에게도 있었습니다

창26:12~1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

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불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어,,” 사람의 노력만이 아닙니다.

임마누엘의 복인 줄 믿어야 합니다.

 

신약에서도 나타났는데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니,

(행2:42)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믿으라 믿으라“ 해서 삼천이나 더 한 일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절대로 이런 일은 내 힘이나 사람의 노력으로 되어 지질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때 나는 무엇을 구할까요?

개인의 성공이나 단체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구하여야 합니다.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현대인은 분주하고 피곤합니다.

그러나 옛날도 그랬을 것이고 전쟁 통에서는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라는 다윗의 고백처럼,

주님 앞에서 살 때 흥망이 ‘흥’으로 결정되고 생사는 ‘생’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2) 두 번째에도,

오늘 말씀은 다윗이 왕이 된 후 첫 번째 전쟁에서 하나님께 여쭈어 불레셋을 물리칠 수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똑같은 불레셋이 또 침공해왔습니다.

이쯤되면 어떨까요? 여러분은 어떨까요?

번거롭게 묻기 보다는 전과 같은 만큼 스스로 알아서 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처럼 믿고 이처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또 여쭈었고, 하나님은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처음에는 “19절) ~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불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그리고 두 번째는 구체적이었습니다.

“23절) ~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

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다윗의 믿음이 참 신선하지 않나요?

기분 따라, 날씨 따라, 경험 따라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도 역시 신박하셨습니다,.

곧 응답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믿노라하면서 엉뚱한 데서 길을 찾거나 물으며 삽니다.

성도들도 돈을 주고 우상이나 신비한 터를 찾고, 인공지능에게서 상담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어디서나 우리 성도에게는 개방되어 계신 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슬픔과 아픔과 다급함 속에서 말 못하거나, 혹은 개떡 같이 기도할지라도 찰떡같이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지난 1일에 국민일보에 저의 기도문이 실렸습니다.

나로서는 기도하기 위한 기도문이 아니라 그처럼 기도한 기도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해 인공지능에 기도문를 넣고 글자 수를 문의했더니,, 주문하지 않는 멋진 기도문도 나

왔습니다.

살펴보니 내용은 같아도 내 기도문과는 어투와 문체가 달랐지만 미려한 것이 좋았습니다.

이때 문득,,생각난 말씀이 있었습니다.

출20:25)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

라

그러면 어떤 제단일까요? 금 제단이나 은 제단일까요? 전혀 아닙니다.

24절)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네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하나님은 언제나 중심을 보시는 반면 세상은 언제나 겉을 보는 만큼, 기도문도 중심보다는 겉인 문장을 볼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경건의 능력은 없는,, 그래서 회칠한 무덤 같은,

그러므로 회칠한 무덤 같은 외식신앙이 진짜로 인정되는 모순이 떠올랐습니다.

 

결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건과 거룩은 세상 기준의 모양이 아닌 능력입니다.

즉 주님의 보혈을 믿고 나아가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함이 성도의 기본자세가 되고 능력기도와 인생승리의 비결입니다.

성도의 권위나 교회의 위엄이라는 것이 보이는 모습이나 양이 아닙니다.

정량화된 스펙이나 자격증은 더욱 아닙니다.

주님이 계시느냐,, 과연 그 안에 사느냐의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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