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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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몸 구성부터 신묘막칙한 존재라지만 사는 이치 또한 신기하다.
본래 이기심이 있다지만 그 이기심은 내가 손해볼 듯하면 곧잘 이타심으로 바뀌어
협조와 협동심을 발휘한다.
행복은 어떤가?
나를 위했던 행복 보다 남을 위했을때 그가 행복해 하면 나를 위했던 행복 보다 더 크다.
또 사는 이치는 어떤가?
아이들 데리고 미국으로 이주한 목사님이 계시다.
오직 아이들의 교육 목적으로,,
아이들은 그동안 갑절로 생겼건만 목회와 삶은 영 신통치 않아 보인다.
반면 호주 유학중에 연고없던 네팔로 오직 선교떠난 목사님도 계시다.
초기 정착에는 지옥고생했다지만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임마누엘이다.
네팔지진 후 존재감이 드러나 여기저기서 협력 받고 우연찮게 네팔로 여행오신
총회목사님이 전담 후원자로 자청하였으니 선교가 널을 뛴다.
그 모양에서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과연 이런 것이구나 를 실감한다.
대비된 두 모습,,
나를 위해서 살고자 하면 죽고
복음을 위해서 죽고자 하면 산다는 이치를 여실히 증명한다.
세상을 이기는 이치는 어떤가?
흔히 분노 보다는 인내가,,
복수 보다는 용서가, 폭력 보다는 사랑이 낫다지만 경험하기 어렵다.
이 역시 경험해야 내 지혜가 된다.
사람이 영적인 존재라는 의미는 이런 이치로 살게끔 애당초 창조된 것이다.
믿음과 신앙이란 이 증험 아닌가?
시125: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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