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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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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11-27 07:59 조회 1,98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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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런의 구실로 부탁온 요청을 2년 남짓 사양했지만  다시 요청을 해왔기에,

이번에는 내심 응낙하고 기상과 함께 설교를 작성하여 원고와 사진을 보내주었습니다.

모일간지 종교란에 실리는 설교인데,

급했는지, 배려했는지, 이틀 만에 실렸는데 토요일인 어제였습니다.


한 10년 전에 한 번 했습니다.

관계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전국의 뭇 성도들에게 설교한 셈인데 재현된 것입니다.

라디오방송은 하면 끝인데 신문은 어떤 내용이든 두고두고 기록에 남기에 어렵습니다.

내 부족과 무식과 별난 성씨의 이름과 늙어 추리해진 얼굴까지 박히고,

이밖에 설교가 넘치는 시대에 변방의 작은 나까지 굳이,

설교는 들어야 하는데 읽는 설교가 과연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 사양하는 것도 교만으로 보이고 배려하는 이에게 결례여서,

또 한번은 해야 그동안 배려에 대한 답례와 더 이상의 채근을 받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런 결정에 생각난 말이 있었습니다.

카드사에서 포인트 사용하라며 전화가 왔을 때,

"사양했는데도 너무 전화가 옵니다" 며 거절했더니 그들의 해명이 확실했습니다.

"포인트가 있으면 전화가 가니 사용하시면 됩니다."


뭐든 한두 번은 해야 할 때가 있나 봅니다.

총회나 노회 같은 협회에서의 직을 사양했더니 나를 건너뛰기보다는 오히려 정체되었습니다.

사노라면 나 좋거나 싫어서만 안 됩니다.

때론 책임도 있고 흘러가는 때도 있는데 정몽주의 '단심가'와 이방원의 '하여가'가 웅변해 줍니다.

이 둘의 조화가 사는 모양새고 지혜일 듯합니다.


시 36:11) 교만한 자의 발이 내게 미치지 못하게 하시며 악인의 손이 나를 쫓아내지 못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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