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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요, 멍이요. > 목사님칼럼

장이요, 멍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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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10-21 21:42 조회 2,79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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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세미나를 참석하니 그 강사의 목회가 대단했다.

7만명 지방 도시에서 한 가정으로 개척한 후 15년 남짓한 지금 1500명의 교세를 이루었으니,

그 도시에서의 모든 성도들을 수용할냥 기세가 왕성했다.

그의 간증은 패배의식과 피해의식에 가득 찬 작은교회나 목회자에게 한첩의 녹용일테다.

그러나 생각해 봐야한다.

도시인구가 줄어드는 그곳에서 뭐짓고 뭐짓고 뭐도 짓는다니, 건축업자가 아니면서,

그 또한 요즘 뜨는 강사라니, 이런 곳에 열광하는 시대의 신앙도,, 솔직히 마뜩잖다.


아들아이가 입사 포기한 회사에서 오늘 투신자가 생겼단다.

얼마 전에는 과로사가 있었고, 최강은 아니 최고는 언제나 댓가가 지불된다.

이 회사는 업계의 불이 꺼지지 않는다 하여 그 지역의 등대란다.

샌드위치 명절, 황금연휴에도 블라인드 쳐놓고 직원들은 나와서 일했었단다.

그러나 최강이란 이면에는 " 업계에서 근로시간이 최악이라는 건 이미 업계에 소문이 파다함" 의

불명예도 함께얻었다.

최강은,, 삶이든 소유든 직원들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

그런데 왜 몰릴까? 최강이라는 이름의 후광때문이다.

이름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지만 선택은 자유이다.


삶을 추구하면 소유는 없다.

소유를 추구하면 삶 역시 없기에 두 가지는 긴장의 관계이고 상호의 관계이다.

오늘도 자유를 누리며 가을 볕에 만족하는 이가 있었다면,

불안한 권좌에서 떨던 이도 있었을 터이다.

일반적 소유의 삶은 밖에서 식사는 많이 해도  식구들과는 못하고, 통장의 잔고는 보아도

예쁜 가을정취는 못볼것이다.

삶을 추구하면 어떨까? 푼돈도 항시 궁할 것이다.


보이는 삶을 추구하면 이상이 사라지고, 이상을 추구하면 보이는 삶이 초라하다.

그래서 조화가 절대적이다.

교육, 전통, 개인의 인격, 신앙 등이 망라되어 조정을 한다.

그럼에도 본심은 둘다 잡으려 하거나 혹은 탐심에 치우쳐 삶을 뭉게는 비극을 맞는다.

이런 일이 이 시대에 많은 것이 이상하지 않다.


한 지인은 맨주먹으로 열심히 사업했더니 가정이 깨져버렸다.

새가정을 만들고 또 열심히 일했더니 상장기업이 됐다.

더 큰기업으로 성장하고자 매물로 나온 기업을 합병인수했으나 큰손해를 보았다.

그리고 그 공장을 철거하려다 폭발사고가 났다.


삶을 위하여 소유가 있는데 그만 소유가 지배하는 삶이다 보니 삶이 노예가 되는 일이 참 많다.

후회만 남을 일이다.

어제오늘 이런 면에서 삶의 꼴들을 살폈다.


전1: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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