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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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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7-02-10 16:43 조회 2,65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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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사이 특히 우리 청춘들이 좌절하고 분노하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태백과 흑수저와 헬조선을 외치더니 이제는 '이생망'을 외칩니다.

"이번 생애는 망쳤다" 는 자조 섞인 탄식인데 이유는 간단합니다.

취직들이 안된 탓입니다.


이런 상황을 개인의 탓으로 치부하기 보다는 제도와 구조적 문제로 봐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일자리가 없기 때문인데, 미래는 더 심각할 것입니다.

이런 사회는 위험하여 사회주의의 이상이 발생합니다.

우리 사회에 이미 좌파성향이 많은 것도 이 영향입니다.

과거 노동자가 부르조아를 혁명으로 지배했던 프랑스혁명이 그 실례이고,

현대 남미국가들에게 좌파정권이 들어섰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민주국가입니다.

공산주의 사회국가와 반대적 이념으로 복지중심의 유럽형이 아니라

개인중심의 미국형인데 부동산중심의 자본주의 입니다.

이 부동산중심의 자본주의 폐단은 언제나 노동자월급 보다 부동산 상승폭이 높아,

부동산 소유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점점 부자가 되고,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해도

부동산 가격을 따르지 못해 결국 가난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자연 부자보다 가난한 자들이 많다 보니 부자에 대한 반감도 크고 민심도 좋을 수 없어,

현 노동조합의 구호나 투쟁목적이 이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이 단초는 청산못한 옛친일파들의 자본 기득권이 6.25 전쟁과 군사정권을 거쳐 현재까지,

이 후손들에게 대물림되어 부익부빈익부를 작용시켰고, 드디어 개천에서는 용이 나올 수 없는

허약한 자본주의의 위험한 불씨로 아직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대기업들이 외국에서 번 수익금을 국내에 재투자하여 일자리와 소비증진을 촉구하는 선순환이 되지못하고,

사회불안과 노조파업과 같은 경영불안으로 보유만 하고 있으니, 대기업은 돈이 넘쳐도

시중에는 돈이 막히는 현상이 중증으로 왔습니다.

이러기를  거듭하여 마침내 한계점에 와 '이생망'이 왔는데 이 다음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이럼에도 기성세대들은 청춘들을 야단만 칩니다.

그러나 착각이고 오판입니다.

청춘들의 게으름과 나약함만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상고만 졸업해도 은행의 정직원이 되었고, 야간대학만 나와도 종합상사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스펙으로 정년까지 마칠수 있었습니다만 현재는 턱도 없습니다.

서울의 4년제 대학 출신자들이 많은 만큼, 지방대나 전문대 출신들은 서류전형도 안됩니다.

청춘들이 공무원고시에 매달리는 이유도 괜한 일이 아닙니다.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지만 취직은 어렵고 그후에도 불안정하기 때문에 가장 바람직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 지경에 취직을 위한 스펙쌓기는 모두에게 일상이 되어 유치원부터 대학졸업후까지,

사교육은 큰 부담입니다.


지방 취준생이 학원을 다니면서 원룸에서 생활한다면 어떨까요?

이는 또다른 고난이고 가족 전체의 고통이며 가계의 큰 부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취직을 한다해도 평생봉급을 모아 집을 살 수 없으니 희망이 사라지고,

결혼을 해도 자칫 자녀에게 가난이 대물림될 듯하여 좌절하며 권세자와 부자에게

부러우면서도 반감을 갖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는 한탕주의와 유흥과 부패가 성행하여 도덕적 해이가 만연합니다.

정상적으로 살 수없기 때문입니다.

복권방에 줄 서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싸구려인형 뽑기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생활상승과 신분상승을 정상적으로 못하니 혹 기대하면서 대리 만족하는 현상 아닌가요?

우리 청춘들이 여기에 노출되고 유혹 받고 있음도 사회적 불행의 단상입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성숙한 자본가는 함께 잘살고자 사회적 기부를 합니다.

이 기부금을 공동재에 활용해 좋은 공교육과 주택공급과 기타 복지를 늘려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듭니다만, 미숙한 자본가는 오히려 자기 사유재를 늘려 상대적 박탈감과 공분을 얻어 미움을 삽니다.

우리의 모양은 무엇인가요?


국가가 나서서 부자에게 증세하여 가난한 자들이 살도록 한다지만 정권마다 다르기에 혼란만 왔습니다.

그러나 역시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

강제로 징수하면 과거 공산당과 다를 바가 없지만, 정책적으로 부자증세를 하고 또 다른 혜택을 주어

사회적 약자를 살리는 공이 있도록 하며 투자의 환경도 만들어 줘야 합니다. 


청춘들을 살려야 합니다.

국가의 힘이고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저출산도 끝내야 합니다.

유럽형 자본주의로 전환되어 저녁이 있는 삶이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정치와 경제는 마치 썀쌍둥이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위기를 어쩌지 못해 전전긍긍합니다.

정치도 표심따라 움직이지 말고 수술이라는 개혁을 위해, 국민적 합의와 용한 전문가가 등장해야 합니다.

애국심에 호소하고 시대의 불운으로 여겨 방치하기에는 그동안 썀쌍둥이는 너무 심각하고 컸습니다.

노동개혁도 정치개혁도, 뜨거운 감자지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도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

우선 배고프다니 떡하나 주는 식의 포풀리즘을 하는데 자멸의 길입니다.

한 두마리 생선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잡도록 해야 합니다.

올해도 벌써 우울한 소식이 들렸습니다.

고용절벽이라는, IMF이후의 최고랍니다.

대기업의 경우 고용율이 전년도에 20~30% 로 대폭 줄였답니다.

또 20대 파산이 1만명이 넘었다니 피기도 전에 서리맞아 진 꽃이 됩니다.

이런 문제가 개인은 물론 가정의 피폐함을 만들고 국가의 빈곤도 만듭니다.

내 곳간이 마르면 효성도 애국도 실종되는 일은 순리 아닌가요?

그럼에도 어느 대권후보들도 이 청춘의 문제에 공감하거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글을 보니 나쁜나라는 내가 번 것을 나누워 주는 나라이고,

나쁜 지도자는 나누어 주리고 외치는 지도자랍니다.

일리는 있습니다만 숲의 나무도 혼자서는 못삽니다.

남극의 펭귄도 극한 추위에는 바람을 등지고 웅크리는 것은 물론 떼지어 뭉치고,

조금씩조금씩 자리 양보하여 바람을 서로가 맞는 고통분담을 했습니다.

경주최씨 부자네는 기근시에 사방 100리에 굶어죽는 이가 없도록 하고,

흉년때에 전답을 사지말라는 가훈이 있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180만명이 이 땅에서 꿈을 이루고 있습니다.

본국의 서너배의 임금을 받기에 여기서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청춘들은 조국에서 좌절하고 외국에 나갔다한들 저임금으로 생고생만 합니다.

고학력인 우리 청춘들에게 외국노동자처럼 하라는 말은 품격 폭행이고, 국가 손실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입니다.

어느덧 산업의 자동화를 지나 지능로봇화도 코앞에 와 있는데, 4차 산업혁명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더라도 이생망을 외치는 우리 청춘들을 꽃피우게 해야 합니다.

훈풍은 남쪽에서부터 분다는데, 입춘이 지났어도 우리 청춘들을 위한 바람은 아직 기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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