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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전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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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08-03 15:32 조회 2,77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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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하는 친구목사에게서 카톡이 왔기에 답장을 했습니다.
" 덥습니다.
절전모드로 산답니다.
강냉이 먹고 파자마차림에 성경보면서~"

맞습니다.
지난 주에 친구목사가 고향 옥수수라며 한 자루 보내주었기에 여기저기 나누고도,
주일에 파티하고도, 몇일째 먹고있습니다.
그리고 영왕기하를 읽고 있었습니다.

요즘 더워서 입맛도 없어, 빵 한 조각에 조반을, 강냉이로 점심을, 국수로 저녁을,
뭐 대충 이렇게 때우고 있습니다.
절전모드로 사니 속은 편하고 여유롭습니다.

절전모드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세상이 휴가철이라서 거리가 휭하고 문닫은 상점들 투성입니다.
그럼에도 종전 같으면 수련회니 뭐니 했겠지만 지금은 이럴 일이 없습니다.
아니 꼭 이럴 필요가 뭔가? 하기도 했습니다.

그 설레임과 극성에 비해 효과는 늘,,열심도 좋고 열정도 좋지만, 교회가 싸우니 본전도 못찾고,
덕을 세우지 못하니 빈항아리가 되고, 세상은 먹고사는 일에 분주하고 피곤한체 죄보단 떡에 관심을 갖으니,
변화는 커녕 오히려 참담한(?)모양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득, 믿음은 무엇이고 교회가 무엇인가? 싶어졌고
결국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에 머물렀다가, 묵상하다가,,
설교가 되었기에, 아예 설교문까지 작성했습니다.

무엇이 되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여러 방황과 혼란속에서 복음을 듣고, 나 같은 사람을 위한답시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목사로써 어떤 목회를 해야 할 것인가? 고심했습니다.
그 고심이 상관있었는지 여러 과정을 지나 지금의 목회로 귀결되었습니다.
그리고 배운 것은 '어떻게'보다 '무엇을' 이며, '꼴'보다 '됨됨이' 이고, 세상이 아닌 '나'였습니다.
기도와 설교를 그토록했으면 변화됐어야 했는데 여전합니다.
타인과 세상의 변화도 매일반 입니다.
따라서 절대적인 것, 완전한 것 보단 그렇지않음과 못함에 또한 긍휼과 은혜에 집중하고,
프로그램, 시스템, 외양, 정치, 보다는 사람과 주님께 촛점이 맞추어졌습니다.

내가 실한 강냉이 삶아 먹으니 그렇지 못할 북녘의 동포들이 생각나고,
날 더우니 국군장병들이, 세상살기 팍팍하니 서민들의 애환이, 이 속에서 점점 허약해지는 교회들의
거룩한 위엄도 걱정돼 기도가 됩니다.

어제 여의도금융회사에 다니는 집사님께 전화했습니다.
동생일을 봐주다가 사는 일이 심히 힘들어진 집사님입니다.
집사님은 찬양사역자로써 찬양사역에 여전한 부담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일을 해야 하나님께 맞추어지겠지요? 목사님? " 그러나 난 달랐습니다.
"집사님, 로뎀나무아래의 엘리야를 보세요, 그가 주님을 먼저 찾았나요?
오히려 찾아주신 이는 주님이셨지요, 그리고 떡과 물을 먹으라 하셨고 더 쉬도록 하셨지요
주님은 아버지심정으로 다가오셨지, 교관의 표정으로 일으켜 세우시지 않았답니다."

이는 모든 시기와 우연을 주님께 찾은 것이니, 언제나 주의 종이라는 이들과 그 일은 마찬가지겠지요.
그렇지 못하면 조바심과 열등감을 갖게 되고 변칙과 불법도 동원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도 여러 모드가 있습니다.
ON,Off 는 기본이고, 파워, 포맷, 대기, 절전모드가 있어 자의든 타의든 작동되곤 합니다.
실업이나 실직은 대기모드라면, 휴가니 피서니하는 한 철 한 때의 쉼은 절전모드일 것입니다.

절전모드는 숨쉬는 것도 작게, 돌아눕는 것도 살살, 심방도 만남도 외출도 꼭 필요가 아니면 마는 때입니다.
뭐든 삼가하고, 각근히 행하는,
좀 더 선선한 기운이 들때까지, 이렇게 최소한의 절전모드로 8월을 살고자 합니다. 

시29: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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