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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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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09-08 15:18 조회 2,87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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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모 그룹의 2인자가, 그후에는 신문사장 부인이, 어제는  청년들 4명이,

오늘은 유명 야구해설가가 자살을 했다.

듣기만 해도 우울한 소식인데, 진작에 본인들은 이 순간까지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다.

자살의 충동과 생각 그리고 준비,, 그 실행을,

누구는 먹고 살만 하니 자살한다 하고, 누구는 심약해서라고, 누구는 우울증이라고, 누구는 마귀에게

씌워서라지만, 이유나 방식 보다는 자신의 생명을 끊는 쓸쓸한 자해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흔히 자살의 반대가 살자 라며,,생각의 전환을 유도하는데 바람직 하다.

살면서 죽고픈 형편과 심정없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그럼에도 사는 것은 꼭 살만해서만도 아니고

때론 죽지못해서도 있다.

북한에 억류된 우리 목사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이들은 죽지도 못한체 있을테니, 생명중시 사상과 고난의 의미는 십자가에서 얻을 수 있다.

믿음은 이 안목으로 처신하게 한다.


누가 손 내밀때 억지로라도 잡아주어야 하며 나 역시 손 내밀 수 있어야 한다.

여하한의 죽음은 혼자 가는 길이어도 그 직전까지는 이웃이 있어야 한다.

그 이웃은 때론 내가 혹은 저가,,그러나 이웃 때문에 죽을자가 살기도 한다.

죽은 후에 명복을 빌기 보다는 죽기 전에 붙잡아줘야 한다.


배 고파서, 억울하고 원통해서, 외로워서, 힘들어서, 존재감이 없어서, 모멸감이 와서, 화가 나서,

목매달아서 죽고, 가스 불에 죽고, 약으로 죽고, 뛰어내려 죽고, 자해해서 죽는 자살은 모두의 비극이다. 

아무리 못난 세상이라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했기에,, 자살은 그쳐져야 한다.

흔히 죽을 용기 갖고는 능히 살 수 있다고 한다.

오늘도 죽기를 소원하는 이들에게 "그래, 살자꾸나" 하는 희망과 용기가 있기를 기원한다.


히12:2) ~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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