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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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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08-26 12:04 조회 2,77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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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인 모 여성인사는 현정권에서 장관을 두번이나 하게 됐다.

50대 초반인 그녀는 앞서 18대 국회의원과 정무수석도 거쳤다.

정치성은 있으나 정치적이지 못한 나는 그녀가 잠시 부러웠다.

그러나 곧 "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위 말씀을 상기하며 서민의 자유와 주께 소명 받았던 그때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일은 가끔적이기에 사도바울말처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의 어려움을 체득한다.

이 때 함께 상기되었던 말씀은, 그래서 오늘까지 묵상된 말씀은 하나님이 인생에게 최초로 하문하신,

아담을 부르시며 "창3:9) 네가 어디 있느냐" 와, 두번째 하문하신 "창4: 9)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와,

세번째 하문이신 "창4:10)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이다.

믿건대, 첫번째는 정체성에 대한 확인이고, 두번째는 사회적역할을, 세번째는 그 책임일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친구목사에게 "모든 공직자들과 교직자들과 특별히 성직자들은 좋은 윤리가 있어야 된다"고 했다. 

주님은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에서 "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마5:14)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로써의 그 사회적역할을 교훈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성공이라면 이 소금과 빛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조차 사회적성공만이 성공이라 여겨, 크고 높고 많이 되는 일을 추구한다.

그럼에도 빛의 역할은 없다.


어느 옛선비는 "지팡이 하나, 나귀 한 필, 시렁의 책 몇권이면 사는데 족하다" 했다.

자기 정체와 존재에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선비의 정체는 있으나 역할은 없다.

역할이 없다는 것은 본분의, 정체의 망각이거나 상실일 것이다.


여러 분야에서의, 소위 성공자들의 문제를 본다.

그들의 문제는 역할의 불량으로 개인은 물론 사회적 파장이 크다.

이글을 쓰게된 동기도 방금 TV에 뜬 자막때문이다.

"롯데부회장, 오늘 아침 검찰조사 앞두고 자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롯데 가신으로써의 충정인지, 검찰조사에서의 압박인지, 이러저러한 회의인지 모르지만

그의 성공은 개인과 사회의 불행이 된 것이다.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가?


재벌이 자본가라면, 그 사회적 역할을 이루어 세상곳곳에 돈이 돌도록해야 했을테다.

그런데 그렇지 못해 그 재벌의 딸은 구속되고 총괄회장은 검찰소환을 앞두고 가신은 목매달은 것이다.

정치가라면, 정무직이라도, 아니 임명직이라도 국가의 녹을 먹는다면 그 성공을 국가에 쏟아야 한다.

역시 자타가 보는 사회적성공자라면, 성공의 빛을 여하한 만큼이라도 사회가 누리게 해야 한다.

세상은 언제어디나 문제가 있어 유토피아는 없다지만, 아담은 성공보다는 아담으로써 있을자리에서

해야할 일을 해야한다.


유감되게 우리의 교육과 사고는 애당초 아담임을 가르키지 않는다.

더 유감된 것은 나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며 혹 안다하여도 숨기는 교묘함의 기술을 배운다.

더더 유감된 것은 내 이웃을 모른다.

수평적관계는 없이 오직 수직적관계인 갑과 을과 병만 존재한다.

그러나 꿀벌이 못사는 세상이라면, 맹꽁이가 없는 땅이라면 나도 못살게 된다.

하나님을 모르니 그 마음에 두려워함이 없고 감사도 영광도 오히려 아담인 내가 찬탈하고 있다.


소유냐 존재냐가 우리 인생사의 큰화두일찌라도 "아담아" 하고 부르시는 거룩한 음성을 듣는다면,

"네가 어디있느냐" 하는 질문앞에 선다면, "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와 "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는

는 답을 얻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소유라는 성공보다는 존재라는 역할에 촛점이 맞추어져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말씀에 대한 종말적 준비가 있을 것이다.


전2:11)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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