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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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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09-19 18:33 조회 3,20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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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에게        2015,9,15

어제오늘 시편을 보고 있습니다.
의인의 간구요, 경건한 애가입니다.
구절구절에 "여호와"가 등장하고, 극한의 지경에서 주를 찾으며
그 주와 동행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백향목처럼 발육하라로다"에 의구심이 났습니다.
분명 "여호와의 궁정에 심기웠음이여" 하였건만 이 번성함은 실제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상적으로 봐야될 듯합니다.
"의인에게는 고난이 많도다" 했던 바가 성경전체의 맥이고,
주님은 물론 기독교 역사와 그 길을 갔던 믿음의 선각자들이 증인입니다.

우리의 시편에는 누가 충만할까요? '나'중심적일테지요.
물론 '애가' 는 없을테고요.

우리는 이상적이기 보단 실제적인데서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며 빛이 청청하여"와
"흥왕하리로다." 를 추구하여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은 마다하지 않는지요?
그래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비굴하고 비참한 신앙이 되지는 않았는지요?

옛신앙처럼 오직 참복음을 가짐으로써 거룩하고, 거룩하기에 세상과 싸울 담대함이 있고,
담대하기에 승리하며 그 승리를 통해서 마침내 영광된 신앙됨을 망각하지 않았는지요?

* 위의 내용을 아내에게 말했더니, 성경이 발육하리로다한 것을 당신이 그렇지않다 하여
그처럼 말하면 되느냐며 핀잔했습니다. 
혼자의 궁상이었지만 어쩌면 배가 고파 억울한가 봅니다. 

 벗에게 2,          2015, 9, 18

도서관에서 몇권의 도서를 대여해 와 단숨에 처치했습니다.
그 중에 중국고전을 갖추린 책도 있었습니다.
또 공자왈, 맹자왈, 순자왈 이었지만  한비야, 손자병법, 36계주행은,,좋았습니다.
그러나 재미는 성경만큼 못했습니다.
나름 깊은 사상이라며 선선설이니 선악설을 말했지만 근본인 죄와 그 기원과 형벌과
구원은 없었습니다.
역시 내게는 계시된 성경이 탁월했습니다.

벗에게 3

닭은 새벽을 알리고
개는 집을 지키지요.
생긴대로 은사대로
모두가 모두가 그렇게 살아요.
그러기에 왜냐고 묻지를 마세요.

누런닭도 있고
검정닭도 있고
흰닭도 있어요.
애당초 그렇게그렇게 되었지요.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물새는 물가에, 산새는 나무위에
참새는 처마속에 살아요.
독수리는 절벽에 살더군요.

가난한 자는 쉽게 망가져도
부자는 교만하기가 한결 덜하지요.

지식없이 생각이 많으면 좌경이 되고
생각없이 지식만 있으면 우경이 되어요.
이 또한 경계할 일이지요.

다만 복음신앙은 하나님을 바라고 중용의 도리를 처신케 하지요.

출20:21) 백성은 멀리 섰고 모세는 하나님의 계신 암흑으로 가까이 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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