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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들어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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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04-14 10:16 조회 3,57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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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에서 오신 목사님은 늘 다니는 청진을 갓 다녀왔단다.
그곳 안부를 묻는 나에게 "상황들이 좋지 않습니다."
여기서 통일운운했던 말들이 다 헛말들은 아닌 듯했다.

잠 청하며 병중에 있는 친구와 한 탈북민에게 격려의 말을 보냈다.
두 겹의 암을 수술한 친구는 무엇에 소망을 둘까?
단신으로 탈북한 후 정착한 탈북민은 이산의 아픔을 어찌 달랠까싶어서다.

후두둑, 봄비가 창을 치는 소리에 새벽잠이 달았다.
뒤척이면서도 스치는 시상(?)은 있었다.

며칠 전 보았던 팔랑거린 노랑 나비는,
날개를 고이 접고, 비 피해
어느 그늘에서 웅크리고 있을테지
신비한 비상를 고대하며, 

비오기 전에 벚꽃은 작은 바람에도
눈발처럼 곱게 흩날렸다.
아까워, 안타까워,
고운 꽃도 그렇게 되었다.

모 기업회장은 권력의 언저리를 돌고돌다
"억울하오"하며 북한산에서 목매달아 죽었다.
그 눈물의 의미에 연민를 가졌다.
 "받들어 돈"이 빚은 풍조일 테다.

고추밭은 고추를 심고, 논에는 벼를 심고
쓰레기 묻은 곳은 매립장이고,
죽은 사람 묻는 곳은 무덤이다.
그렇다면 생명있는 성도에게는
묻는다보단 심는다가 옳지 않을까? 
그리고 무덤이라기 보다는 부활터는 어떨까?

부활절과 별세하신 원로목사님의 장례와 더불어
이러저러함의 소감들이 만감과 만음과 만상이 되었다.

잠21:30)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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