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백
페이지 정보
본문
지금도 강연하는 96세 철학자의 짧은 TV강연을 듣고, 이 강연을 본 기자의 인터뷰도 읽었다.
이 철학자의 글은 오래전 읽었기에 이름은 생소하진 않았지만, 미소를 머금은 얼굴은 그가 살아온
삶의 초상이었기에 소년의 웃음보다도 좋았다.
많은 내용 가운데 서너가지가 인상이었다.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뭘까요?
"사랑하는 사람,이웃,국가가 그런 대상이 될수 있겠지요.
나이가 드니까 나 자신과 내 소유를 위해 살았던 것은 다 없어져요.
남을 위해 살았던 것만이 보람으로 남아요"
- 만약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느 나이로 가고 싶은가요?
"60세로 돌아가고 싶어요"
-예상 밖입니다.젊음을 갖고 싶다고 할 줄 알았는데요
"젊은 날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 때는 생각이 얕았고 행복이 뭔지 몰랐어요.
중략) 우리 인생에서 노른자의 시기가 언제였을까로 대화한 적이 있었어요.
답은 65세에서 75세까지였어요. 그 나이에야 생각이 깊어지고, 행복이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됐거든요"
-선생님이 알게 된 행복은 어떤 것입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고생하는 것, 사랑이 있는 고생이지요"
-독실한 기독교인이지요?
"그렇다고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지성적인 고민을 하면서 목사의 설교를
받아들일 수는 없거든요. 예수님은 교회를 지키기 위해 교리를 가르친게 아니지요.
예수님 자체가 우리의 인생관, 가치관이 돼야지요"
위의 내용은 나도 알만하다.
60세이상의 경험은 아직 미완이지만 60세에서도 이미 실감하고 있다.
몸은 꿈뜨고 기억은 깜박거려도 사고는 깊어진다.
사계에서 가을같은 시절이다.
얼마나 좋은가? 단풍지고 결실된 그 가을이, 가을은 깊을수록 아름답잖은가?
그래서 만났던 63세의 벗과, 68세의 장로님에게 이 좋다했음을 인용으로 피력했다.
다른 하나는 "~지성적인 고민을 하면서 목사의 설교를 받아들일 수 없거든요~"
역시 공감되는 사안이다.
그러기에 계속 맴돈다. "~예수님 자체가 우리의 인생관, 가치관이 돼야지요"
그의 독실함은 열성적 교회생활이나 열심의 교회 출석과는 별개였다.
그렇다면 목사들은 이처럼, 그리고 이런 지성인들을 위한 고민은 있을까?
교회가 지성인이 머물지 못한다면 어떨까?
이 철학자의 글은 오래전 읽었기에 이름은 생소하진 않았지만, 미소를 머금은 얼굴은 그가 살아온
삶의 초상이었기에 소년의 웃음보다도 좋았다.
많은 내용 가운데 서너가지가 인상이었다.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뭘까요?
"사랑하는 사람,이웃,국가가 그런 대상이 될수 있겠지요.
나이가 드니까 나 자신과 내 소유를 위해 살았던 것은 다 없어져요.
남을 위해 살았던 것만이 보람으로 남아요"
- 만약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느 나이로 가고 싶은가요?
"60세로 돌아가고 싶어요"
-예상 밖입니다.젊음을 갖고 싶다고 할 줄 알았는데요
"젊은 날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 때는 생각이 얕았고 행복이 뭔지 몰랐어요.
중략) 우리 인생에서 노른자의 시기가 언제였을까로 대화한 적이 있었어요.
답은 65세에서 75세까지였어요. 그 나이에야 생각이 깊어지고, 행복이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됐거든요"
-선생님이 알게 된 행복은 어떤 것입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고생하는 것, 사랑이 있는 고생이지요"
-독실한 기독교인이지요?
"그렇다고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지성적인 고민을 하면서 목사의 설교를
받아들일 수는 없거든요. 예수님은 교회를 지키기 위해 교리를 가르친게 아니지요.
예수님 자체가 우리의 인생관, 가치관이 돼야지요"
위의 내용은 나도 알만하다.
60세이상의 경험은 아직 미완이지만 60세에서도 이미 실감하고 있다.
몸은 꿈뜨고 기억은 깜박거려도 사고는 깊어진다.
사계에서 가을같은 시절이다.
얼마나 좋은가? 단풍지고 결실된 그 가을이, 가을은 깊을수록 아름답잖은가?
그래서 만났던 63세의 벗과, 68세의 장로님에게 이 좋다했음을 인용으로 피력했다.
다른 하나는 "~지성적인 고민을 하면서 목사의 설교를 받아들일 수 없거든요~"
역시 공감되는 사안이다.
그러기에 계속 맴돈다. "~예수님 자체가 우리의 인생관, 가치관이 돼야지요"
그의 독실함은 열성적 교회생활이나 열심의 교회 출석과는 별개였다.
그렇다면 목사들은 이처럼, 그리고 이런 지성인들을 위한 고민은 있을까?
교회가 지성인이 머물지 못한다면 어떨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