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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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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06-25 20:16 조회 3,47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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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서울에서 들어오는 경우 마두정류장에서 환승을 한다.
오늘도 그랬다, 버스안내판을 보니 '잠시 후'에 온단다.
곧 오겠거니하며 기다렸다, 믿은것이다.
빗방울은 떨어지는데, 그러기를 30분,
다른 버스를 탔으면 벌써 집에 들어가고도 남을 시간에
매연을 맡고 서성였다.
그 친절한 '잠시 후'에 기만당한 것이다.
이 탓에 환승도 안됐다.

소수나 약자가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투쟁, 투표, 민원제기가 있다.
이러한 민원제기를 하라고 시청은 민원실을 운영하기에 이의를 제기했다.
'잠시 후'가 얼마만큼의 시간이냐며,

버스를 기다리며, 계시록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신
주의 말씀이 상기되었다.
'얼마 후' 보다 더 구체적 아닌가?
그럼에도 그 주님은 아직도 오시지 않았다.
카이로스 시간인 것이다.
그럼에도 초대교회는 크로노스로 이해했다.

버스시간은, 세상은, 우리들은, 크로노스여야 한다.

사연

몇가지 사연이 지나갔습니다.
세상은 가뭄과 메리스로 난리를 겪는데,
충북 음성을 심방했습니다.
벗의 회사를, 가고오는 버스에서 시상이 들었습니다.

      -밤꽃-
무수한 가시 박힐 흔한 밤송이도
벌 부르는 꽃을 설레임없이 피운다.
가을의 영근 결실을 위해,
그 화려한 진통을
유월의 땡볕에서 치르는 것이다.

베면 자빠질 밤나무도 이렇거늘
한 사람이 철들기는 어떠랴
하물며 주닮는 신앙은 오죽할까? 

       -퇴근 길-
충혈된 붉은 두 눈 밝히고
꼬리에 꼬리를 문 행렬
누구라 할것 없이
하얀점 선 안 낮은 포복하네

4차선 고속도로 하행선
제집 찾아 나온 길 되찾아
지친 몸 눕히려 가네
내일 아침이며 또 다른 길

미국에서 목사님이, 베트남에서 선교사님이 다녀가셨습니다.
미국은 오래된 벗이요, 베트남 선교사님은 지난 봄에 뇌졸증을 앓아
궁금하던 참이였는데, 후유증없이 나타나 주의 기적을 만났습니다.
선교사님은 74세인 만큼, 베트남선교 1세대인데 그곳 사역 24년을 맞이해서
한인교회, 기업투자, 현지인 교회, 직업및 신학원 등,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이젠 목사님이 오셔서 교수하시면 됩니다."
식사자리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좋았습니다.

귀임하시면서 " 목사님,, 오늘 베트남으로 들어갑니다.
목사님과 동역함이 너무 기쁩니다.
베풀어 주신 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베트남에 오실 것을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량제인 방배동의 목사님은 오셔서 저녁식사는 물론 담소했고 아이들의 용돈도 주셨습니다.
충성파인 내곡동의 목사님은 전에 만났고 오늘도 오셨지만 내일도 만나야 합니다.
행신동의 목사님은 외국에서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찾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내게 '교통비'라며 봉투도 주셨는데 아마도 곧 있다는 딸 혼사의 앞선 배려 같습니다.
마침 베트남 선교사님과의 만남의 주선을 청했기에 소개했으니 더불어 오는 가을엔 가장
좋은 잔치가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만들어 질 듯합니다. 
그리고 가족과 1박2일의 동해를, 큰 재를 이리넘고 저리넘어 다녀왔습니다.
오면서 오대산에 들리고자했으나 얘들은 반대했습니다.
상원사입구가 아무리 멋드러져도 산사는 싫답니다.
가는수고 오는수고가 다였지만 낯설어도 좋은 곳에서의 하룻잠과 몇장의 사진을 남겼습니다.

지난 23일은 연길의 교회당의 입당식과 그곳 신학교출신들의 목사장립식이 있었습니다.
고맙게도 이곳의 노회에서 목사들과 장로들이 축하와 안수위원으로 들어가셨기에,
이런 좋은 사정을 교회와 밖의 몇몇성도들에게 고지만 하고 불참했습니다.
가을에 강의차 들어가야 겠기에, 연길의 저들이 대견했습니다.
교회당은, 정부시책으로 재건축했으나 건축비가 고스란히 빚이기에 내부 인테리어도 못했답니다.
그래서 마이크 소리가 울린다고, 그 공명으로 할머니들은 머리가 아프답니다.
목사장립자들도 훌륭합니다.
전도사로써 목회나이가 다들 15년은 넘었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외지로 돈벌러간 그 시대에 척박한 소명을 받들고자 옳은 목사장립을 기다려 세움을 받았습니다.

전국을 무대로 설교를 강의하시는 박목사님은 예정대로 내일 일산파주지역을 위해
대화역 모교회에서 강의를 한답니다. 
"목사님, 일산으로 입성하기에 신고하려 합니다. 점심을 모실께요.축도도 해주세요"
뜻은 고마워도 점심만 함께하기로 하고 축도는 사양했습니다.
"가장 먼데서 오신 목사님이나 가장 작은 교회 목사님께 축도를 부탁하세요"
그러나 잠시 후 내가 다시 전화했습니다.
"목사님, 림총장님을 모시고 갈테니 축도를 부탁합시다."

다시 한 번

봄까지 도서관을 다니며 가까이했던 독서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뭐든 끝장을 봐야하는 성격탓에 독서도 쉼이 없곤합니다.
느헤미야서나 삼무엘상하서, 열왕기상하서, 요한복음을 강해하고 싶어도
망설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작했으면 며칠 안에 끝내야 되는데,

장거리 운전을 해도 쉬엄쉬엄가는 가는 편이 아니라 가서 쉬는 편이기에
대여한 도서를 내팽개치질 못합니다.
이런 성품,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습니다.

어느덧 야간 독서는 눈이 침침합니다. 
돋보기도 부실해졌고 돋수도 올려야 할 듯합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또 시작합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기때문입니다.

자칫 성경읽기와 겹쳐져도 성경읽기가 허투루되지 않으려 합니다.

시65:11~12) 주의 은택으로 년사에 관 씌우시나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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