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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01-23 11:01 조회 3,67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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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요트를 혼자타고 220일 동안 무기항으로 세계를 운항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향인 부산을 떠나면서, 환송객들에게 손을 흔들며 이런 독백을 했습니다.
"내 소원이었습니다." 그는 소원을 행동에 옮겼습니다.
세상은 행동하는 이들에게 정복당했고 자연은 이들에게 품을 내주고 있습니다.

벌써 오래전 부터 우리 교계는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진것 처럼, 교회에 대한 신뢰가 대폭 떨어졌습니다.
여기저기에선 논의가 많습니다. 그 이유도 다 비슷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어떤 변화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논의는 신학자의 논의 일뿐,  대다수는 "나의 길을 가련다" 입니다.
누구든지 나부터는 제쳐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혁의 대상은 "따로 있다" 는 의미로 들립니다.

먹물은 붓이 바뀌어야 하고 붓은 종이가 좋아야된다고 하고 종이는 책상이 
달라져야한다고 합니다. 결국 아무도 책임이 없어 손에게 책임지우는 식으로,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의 탓으로 간주해 버린 듯 합니다.

그렇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하는 필요성까지는 인정하는데
그 고양이를 못찾았거나 방울을 달, 쥐가 없는 격입니다.

이게 우리의 특성입니다.
앉아서 논의가 끝난 후 결국은 입술로 남을 지적하거나 끌탕만 하곤합니다.
일어나서 행동하지 못합니다. 교육이 그렇고 삶이 그렇고 신앙도 그렇습니다.
청바지 입고 개척한 성향이 아니라 핫바지 입고 종 부리면 양반이라고
폼잡던 성향이 고스란히 배어있어 그런가 봅니다.
모험과 도전보다는 안전과 안정위주로 치달아,
청년들은 공무원직을 가장 선호하며, 젊은 목회자들이 음지로 자원하기 보단
양지의 부목사직이라도 채용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봅니다.

개혁주의 교회가 개혁교회가 아닙니다.
지금 같아서는 우리에게 종교개혁의 필요성이 요청된다할지라도 이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듯합니다.
용기는, 물론 없고 행동도 하지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할 줄모릅니다.
흔히 있다면 앉아서하는 꿈이나 비젼인데, 그 꿈은 잘되기만 소원하고
비젼도 밖보단 안만 보고 있고 세상따라하기 있으니 언제나 요원할 뿐입니다.

뉴스를 보니 2700년대 후반기에는 대한민국이 자멸한답니다.
인구감소로 결국 국민이 없어지는 현상이랍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먼저 자멸하겠지요?
어느 장로교 교단의 전체 주일학교 수는 현재 7000명이랍니다.
그 인원이 고스란히 성장해서 어른이 된다면 어떨까요?
20년 후에는 7000명 성도의 교단입니다.

그럼에도 자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출산장려운동을 지지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은 "믿습니다"하므로 다분히 이상적입니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면 사업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은 "아멘" 하므로 일어나야합니다.
아니 일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개혁하든, 세상을 개혁하든 동네의 휴지를 줍든,
여하한의 행동을 해야 합니다.

이젠 논의는 끝내야 합니다. 이유를 몰라서 못한 것이 아니기에,
누가 아닌, 나부터, 잘먹고 잘살기보단 바르고 확실한 신앙,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지" 보단 "했다" 해야 비로서 진보가 있습니다.

요트를 타고 떠난 그 행동가는 망망대해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만히 앉아 돈걱정하며 살고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기 보단
소원을 따라 행동하는 아빠의 모습을 남겨주고 싶었어요"
지지합니다. 갈채를 보냅니다.

이런 지지와 갈채를 교회가 세상으로 부터 받을 수 있어야 희망교회가
되리라 여깁니다.

벧전 2:16)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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