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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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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02-16 00:09 조회 3,70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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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이름치곤 등대교회가 썩 어울립니다.
더욱이 어둠이 짙은 세상이라면 이 등대는 더 합당합니다.
네팔의 수도 카투만투시의 외곽에 이 등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건축을 위한 대지를 구입했습니다.
곧 건축을 할 예정이랍니다.
불과 4년만의 역사입니다.

태어나 자란 내나라에서도 한 교회가 세워지고 자리잡는데도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듭니다.
그럼에도 잘되질 않습니다.
하물며 타국에서야 오죽할까요?
그럼에도 곧잘 이루워내곤 하는데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선교사들의 훌륭함이 이런데 있습니다.

호주에서 몸 편안히, 두자녀의 영어식 교육을 하면서 안정된
목회를 할 수 있으련만 그 안일함에 바람이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살수는 없다.." 그리고 호주에서 만난 크리스챤 네팔변호사가
"당신이 목사라면서 ,,네팔로 간다면 내가 도와주리라" 는 말에 이끌려
생면부지의 네팔로 떠났습니다만 그 변호사는 한갖 바람잡이일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않았고 곧 그 선교사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허망함에 되돌아 올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믿기에 버티었습니다.

한국에서 준비된, 네팔을 위한 권사와 집사를 방송 중에 만나,
주의 섭리로써,, 두 아이와 사모의 헌신으로 비로서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문화의 차이, 종교간 갈등, 현지 선교사들의 견제와 선교사 개인의 건강이상
또한 한국의 부모들의 어려운 여건등,
그럼에도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가 잠 잘자듯, 주 사랑은 네팔에도
미쳤습니다.

소문이 나고, 사람들이 모이고, 사역자가 세워지고, 그래서그래서
오늘의 등대교회가 된 것입니다. 
네팔에 곡 필요한 교회인 줄 믿습니다. 아니 등대가 꼭 필요한 곳에
세워진 줄 믿습니다.
비록 바다가 아닌 마른 땅일지라도,

이곳의 선교사님은 내 처음 사역의 중학생이었습니다.
겨울이면 양손이 동상에 걸리고, 예배에 지각한, 어머니의 위세에
늘 눌려있던, 키작은 학생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선교사가 된 후 들은 가정형편이었지만
어머니는 새어머니였고, 속아 아버지와 결혼한 탓에 원성이 쌓인,
그래서 그 복수를 아버지를 빼닮은 아들에게 퍼부은 탓에,
그러나 예수믿는 새어머니였기에 신앙을 채근받은 덕에,
겨우겨우 교회에 온 것입니다.

성인이 되었어도 인생의 별희망 보이지 않아 방황과 방탕을 오락가락할 때에
"나 자살 전에 하나님을 만나 보리라" 하여, 떠난 교회의 부흥회를 찾았다가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니 성품이 변화하고 소명을 받으니 꿈이 생겨 좀 늦은 나이에 야간대학교를
다니고 신대원을 마친 후 전도사생활에서 사모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호주로 유학을 갔고, 대충적인 목회적 삶을  살 수 있으련만 소명은 그를 내몬 것입니다.

오래전 학교에서 강의를 마치고 나오니 누군가 "목사님,," 하고 아는체를 하는데
도무지 몰랐습니다. 이름도 밝히는데 언뜻 기억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
권사이름으로 알았습니다. 대학원생이던 그였습니다.
세월의 무게도 있었지만 변화가 너무 커 놀랐습니다.복음의 능력이었습니다.

이런 만남으로 세월이 지났어도 네팔의 선교사는 수시로 소식을 전해 오곤합니다.
요며칠 전에는 구입한 땅의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이래서 그를 위해 기도하기가 수월합니다.
이런 믿음위에 세워진 등대교회가 500만원이 부족하답니다.
그럼에도 그나 나나 걱정이 없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합2: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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