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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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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01-29 09:45 조회 3,879회 댓글 0건

본문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지도를 보며 여행을 한다면 어떨까?
그 지도가 새지도일지라도 괴리가 있다.
그 여행자가 본인이라면 어떨까?
춥고더운 기온에 노출되어 있고 피곤함도 있다.
지도에는 없는 얘기 아닌가?

성경을 따라 사는 삶도 그렇다.
목회와 설교는 이 괴리 극복을 이해시키며
몸소 보여 주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렇지 않다면 어떨까?
"주의 마음을 품으라" 했건만, 사심을 품게하면 어떨까?
"영생을 취하라"했건만, 세상 가치를 심어주면 어떨까?
"돈을 사랑하지 말라"했건만, 축복이라며,,,어떨까?
낮아지고, 비우고, 거룩함을 지향하고의 하나님 나라 보다는 
높아지고, 채우고, 형통함을 지향하고의 세상 나라 발견을
오히려 앞세우니 혼란이 크다.
***
어느 덧, 상거지가 되었고 진상이 되었다.
목사생활 28년의 놀라운 변신이고
교회개척 10년만의 현 꼬락서니이다.

주의 종이라고요, 암요~
축복자라고요, 여부있나요?

여기 저기에 아쉰소리나 해대고
저기 여기서 거부당하고,
주의 종의 꼴이 이렇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서 풍성한,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의 축복자이랍니다.

진리의 길을 간다고요?
복음을 위한다고요?
잃은 양 찾는다고요?
맏아들 노릇도, 아비된 책임도 못해
거리에 나앉게 만들고선,
잘도 위하셨고 많이도 위하셨겠오?
꽤나 영광이 되고 덕이 됐겠오?

참으로 하나님이 상거지가 되고 진상이 되게하셨오?
참으로 그 하나님이 그리하셨다고요?
아니라고요?
내 잘못과 무능 탓이라고요?
주의 섭리라고요?
마귀의 궤계라고요?
그럼 하나님은 어디서 무얼 하셨오?
생사화목을 주장한다함은 무엇이었오?
역사의 주관자는 무엇이었오?
그러기에 상거지가 있고 진상이 있는 거 아니요?
그 통치에 의해? 그 뜻에 의해서?
난 어린 양이 되어 살고 싶었어도
굶주린 사자를 위해 한끼의 양식으로 죽어야함도 있는 거요.
그러니 인생 답이 어딨오? 하나님이 답이잖소.
모범답안은 있어도 정답은 없잖소. 섭리를 붙이면,
그게 우리네 한계 아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인생을 갖고 노는것 처럼 느껴지는것 아니요?
그래서 은혜를 구하고 빌고 간구하는 거잖오?

순리가 무엇이요? 하나님의 마음이오, 운명이잖소?
생긴대로 살아야하는데 이젠 믿음으로 살라하오.
이걸 거스리면 역리요. 반역이요. 내뜻 세우면 알잖소?
그 다음에는 추풍낙옆이라는 걸,
***
위의 우문과 우답이 든다.
욥과 욥의 친구들의 허다한 논쟁 이었다.
사람편에서는 맞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틀렸단다.
욥이 맞는단다.
욥의 주장은 무엇이었나?
"네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토기장이가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지 못하겠느뇨? 하나님은 의로운 자를 정하신다"
여기서 중간에 끼어든 엘리후가 맞장구를 쳤다.
욥이 성도라면 엘리후는 성령의 모형 아닐까?

그렇다, 하나님에 의한 의는, 하나님이 주최자이다.
그 의는 입증되어야 하며, 입증 시키신다.
별빛은 낮보단 밤에 찬란하듯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하나님의 의는, 성도의 역경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것이 성도의 역할이렷다.
욥이 그렇고 주님이 그랬고 뭇성도의 의도 그럴테다.

그렇다면 성도가 역경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그저 잠잠히 바라보며 기다리는 일이다.
믿음은 신뢰이기에, 믿음만큼 소망갖고 인내할 뿐이다.
때론 속상하면 욥처럼 혼자 툴툴거릴 수 있다.
문제는, 욥의 친구들처럼 주변이들의 애꿎은 판단이고 어설픈 지적이다.
이유있는,,, 그리고 정답인냥, 공식화되거나 정형화된 신앙 품새이다. 
하나님과 역경과 믿음에 관하여,,, 운운하지 말라,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살았어도 초대교인들은 사자밥 되었다.
엘리야는 불병거 탔어도, 갑절의 영감 받은 엘리사는 병들어 죽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주적인 통치를 이루신다.
그럼에도 우리의 하나님이며 나의 좋으신 아빠이시다.
이 순위도 이해하자.
성숙한 아들은 아빠를 믿고 이해한다.
좋은신앙이란 이런 것이다.
나를 하나님께 맞춘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아빠를 이해한다.
놀랍고 감사한 것은 그 하나님 아빠는 실수도 없으시고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다.

찬송가)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이루어 주옵소서
밤과 아침에 계시로 보여주사 항상 은혜를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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