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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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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12-05 16:22 조회 3,83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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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만난 목사님은 훌륭한 목사님으로 정평이 났습니다.
출신도 학력도 경력도 매우 훌륭하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그 목사님, "자기 목회는 교인들의 행복만을 위한다." 했습니다.
여기서 나와는 큰 차이가 느껴져 지금까지 혼란이 왔습니다.
예컨대 하나님의 영광이라든지 아님 교인들의 구원이라든지
하질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교인들의 행복과는 다릅니다.
전자는 하나님기쁨을 이루고 후자는 사람기쁨을 이룹니다.
이 둘의 격차는 큽니다. 그럼에도 격차를 해소할 공통분모는
중생이며 성결이고 능력은 성령이고 원초는 복음입니다.
이 과정은 어떤가요?
곧 이뤄지는 과정이 아닌 싸우며 나아가는 성화과정이기에
평생의 엎치락뒤치락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만만치가 않다는 말입니다.
육으로 난것이 성령으로 난것을 거부하는 탓입니다.
오죽하면 사도바울이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을 좋게 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며
교인들을 질책했겠나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목회는 쉽습니다.
저들이 바라는 뜻대로 하면 됩니다.
그러한 비유를 맞추어 주는 일은 서비스업종입니다.
손님이 왕이라 합니다.
여기에 결과도 신속합니다.
만족하면 칭찬과 팁을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믿음의 순종, 성결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 탓에 따르는 자가 적고 결과도 희소합니다.
그러다 보니 동서고금에서 거부와 반발의 역사가 있고
심지어 교회에서 조차 이런 소신, 이 진리를 따르는 종들에게
아직도 저격수를 보내기도 합니다.

모두가 말은 쉽게 합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 진리를 따르는 신앙등
그러나 실제는 부인하거나 부정합니다.
자신을 못박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행복을 구하는 곳이라면 재미는 있을지언정
복음과 진리는 요원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영문밖으로 나가는 일은 소나 개나 하는
멋드러진 일이 아니라 숭고한 희생이기 때문입니다.
의무 보다 권리를 추구한다면 여기에는 없습니다.

행복으로의 길은 여럿이고 초대의 문도 많습니다.
그 가는 길이 직접적일수록 세상길이고 인간적입니다.
또한 옳은 듯해도 필경은 사망의 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주신 행복과 그 가는 길은 세상이 이해 못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그 목사님, 빈 말이거나 혹은 상투적일지라도  
"우리 교인들이 다 영생을 취하는 일이지요" 했더라면 나을 성 싶었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산에 오르는 이와 강을 가는 이와는 목적이 다른 만큼 
길이 다르고 차림이 다르고 도구가 다르다는 것을,
믿음의 선진들은 자기는 물론 사람의 영광이나 기쁨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모르거나 필요치 않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을,
한참을 돌아가도 그 안전과 보장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 목사님도 이를 알기에, 구원 후의 행복을 말했을 텐데
같은 목사에게 한다는 말이었기에 설명없이 하므로
말이 짧았을 성 싶습니다.
아님 나의 귀나 심보에 문제가 있던지,

갈1:9)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찌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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