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HOME · 설교&칼럼

혼자라도 > 목사님칼럼

혼자라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01-04 17:49 조회 3,908회 댓글 0건

본문

대망의 정초에, 남들은 해돋이를 통해 기원을 하고
뭇성도는 신년축복부흥회를 금식으로 참석하는 등의 다짐이 있을 때에
난 집에서 시쿤둥했습니다.
새해라도 새로울 것이 없고 설령 있다하더라도 하늘의 할 바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승진을 하고 영전을 앞두고 있는 벗들에게 주의 말씀을 옮겼습니다.
"시57:7~8)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에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그러면서 옛날의 내 확정됨이 상기되어 기쁨을 갖고
"내 마음은 정했어요 변치말게 하소서~" 하는 찬양을 흥얼거리며,
그 때의 확정이 잘되었음을, 지금까지의 역경이 잘못도 아니요,
버려짐도 잊혀짐도 아님을,,그렇게 여겨던 적도 있기에, 확증했던 것입니다.
그때의 그 감흥이란, 흥얼거리는 내 찬양에 아내는 "무슨 일이냐" 했을만큼,
그래서 그때의 확정을 다시 회상시켜야 했습니다.

나의 '확정'은 그동안 잊었다가 이 말씀을 옮기면서 재발견한 것입니다.
전도사시절, 어느 목사님의 딸을 선보았습니다.
그 목사님은 곧 은퇴할 예정인지라 당신의 교회를 나에게 맡기고 싶노라고..
첫째 사위도 목사였지만 부족한 듯해서 내게 주고 싶다며,, 
이 말씀에서도 그 딸과 더 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교회는 사기업이 아닌 만큼, 하나님의 교회를 목사가 떼주고해서는 않된다 여겼기에,

그 후 일은, 떼돈을 번 친구가 옹색한 목사초년 시절에 찾아왔습니다.
당시 시세로 몇억을 지원할테니 사업을 해보라며,,
그 날 친구의 좋은 승용차에서 내려 멀미를 하며 작은 사택에 들어가 쓸어지면서
내 입에서 나왔던 신음같은 소리는 "내 마음은 정했어요 변치말게하소서" 였습니다. 

얼마 후 이 친구는 또 제안을 해왔습니다.
논현동 모호텔앞에 450평의 땅이 있는데 예배당지어 "헌금을 반반 나누자"였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럴 수 없다는 신념으로 역시 거절했습니다.

이 교회에서의 이러한 부목사시절, 은사 목사님은 은퇴를 준비하셨습니다.
내게 후임을 2번이나 권하였지만 그럴 수 없다며 사양했습니다.
그 교회에 부임해서 가보니 영락없는 후임자 자리였습니다.
그때 기도하기를 "주님 와서 보니 이런 상황입니다. 훗날 후임이 된다면
내게는 영광이겠으나 교회는 손해입니다. 난 목회자 초년이랍니다.
바라기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3년 배웠듯이 꼭 3년을 채우고 나가겠습니다."
이 확정을 지켰습니다.

그 후 방배동에서 여의도로 옮겨갔는데,
부목사로 부임했지만 수년 후 당회장으로 위임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끊임없는 회의가 찾아오기를 
"혹 나는 삯군 아닐까?" 였습니다.
어머니를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나는 삯군 아닌가요?"물어도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지만 그럼에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장고끝에 예배당 건축 후 개척을 나왔고
이제사 그 삯군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이제는 삯도 못받는 변변치 못한 종이 아닌가하는
자괴감이 오곤합니다.

누구든 신념과 신조가 있습니다.
"양반은 곁불을 쬐지않는다" 는 양반의 신조이며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고 긍지이다" 는 끝나버린 TV연속극 미생에서
장 그래의 신념이었습니다. 여기에 탓할 바 없습니다.

나의 신념과 신조는 무엇인가였습니다.
아마도 이 둘을 합친 신조요, 신념인 듯합니다.
"목사는 비참해도 비굴하지 않는다" "나는 예수님의 자부심이고 긍지이다"
말이 되나요? 되던 않되던 이상적일 뿐, 실용은 없습니다.
그래도 않되면 말지언정 되기위해 길 아닌 곳을 가고싶지는 않습니다.

내가 사업가나 회사원이라면 가능합니다.
조직에 의한, 실용을 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든지 타협하며 상호 승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부족해도 진리의 사람입니다. 연약해도 영의 사람입니다.
이 확정을 갖고도 잊은체 살고, 고의든 타의든 어긋나기 쉽상입니다.
그럼에도 대충으로, 혹 누구처럼 산다는 일은 어렵습니다.
나의 전체 프레임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년말에 성경을 보다 "오래 기다리며" 에 꽃혔습니다.감동된 것입니다.
믿음은 이와 같은 모습입니다."언제까지 기다리냐?" 반문할 수 있어도,
여하한 믿음은, 신뢰는 기다림인 것입니다.

이러면서도 문득 아직 집조차 없기에 계약만기일이 다가오니 불안함이 엄습하며,
그만 60세가 되었기에 초조가 뛰따라 오고, 살아온 선택에 대한 후회와 현실에
대한 왕짜증도 불쑥 치고올라오는 등 "나는 쿨했는데 주는 그렇지 않으시구나"의
구차함도 가졌습니다. 그제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믿노라하면서 그 믿음이 뇌를 외출시키지
않았다는 증표일 것입니다.

또한 포기와 체념의 넋두리에서 나온 말은 절대 아닙니다.
크고 유명한 것은 애당초 내게 없습니다.
교회가 크고 목사로써 유명하고? 주가 원하시는 성공일까?
그렇다면 주님은 패장이고 세례요한과 스테반은 망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의 맥은 오직 잘함, 진실됨, 그 중심만 있습니다.
옳게 가느냐가 관건입니다.
주의 평판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험한 길이라도 잘 온 듯해서, 혼자라도 만족해 보니 힘이 생겼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습니다.
천지개벽이 없는 한, 목사직을 내려놓고 달리 살지 않는 한,
이렇게이렇게 살다가 늙어서 그만 쫑칠 것입니다.
그래도 그게 잘못은 아니라 믿습니다. 

시69:18) 내 영혼에 가까이하사 구속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여 나를 속량하소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