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HOME · 설교&칼럼

주여,주여 > 목사님칼럼

주여,주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9-22 20:01 조회 3,837회 댓글 0건

본문

"내가 그 피를 보고 넘어가리라." 주의 약속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 그 피의 언약은 주의 언약이었기에
믿음으로 피뿌림을 받은 자는 누구든 구원함을 얻었습니다.
유월절 사건은, 애굽땅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바로의 백성과의 구별을 이루었고
노예로 신음하던 이스라엘민족이 광명을 얻었습니다.
놀랍고 감사한 것은,  "너희가 그 피를 깨닫거든~" '너희가 그 피를 이해하였거든 ~"
이 아닌 '내가 그 피를 보고~" 였기에 피의 능력과 효력이 확실하였습니다.

출애굽은 새로운 시작이었기에 새해 첫날로 작정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노예되었던, 그 민족이 영광의 하나님의 군대로써 풍악을 울리며 출애굽을 하였습니다.
이 때에, 벽돌을 더 굽겠다고했던, 애굽에서 좀 더 머물겠다던, 그래서 지체된 백성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나일강 보다 더 나은 갈리리의 호수로 인도되고 있었습니다.

홍해를 건너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구원받았기에, 구원 받은 백성으로써의 새율례가 주어졌습니다. 
곧 도래할 새나라를 위한 빛이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애굽의 마늘과 부추를 회상했고, 고기가마 곁을 흠모했습니다.
이 탓에 광야생활은 삼일 길에서 사십년으로 늘어나야 했습니다.

고민이 여기에 있습니다.
어린 양의 피를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공력들을 더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교병을 먹거나 쓴나물을 먹기 보다는 유교병과 단나물을 찾고,
계시하신 '불에 구운 고기' 도 아닌 삶거나 무친고기를 먹고들 있습니다.

고민은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구원을 하찮게 여기고들 있습니다.
이 구원을, 생애의 으뜸이 되고 중심으로 간주해야 할텐데도 세상 지위나 학위나
기타등등의 일로 뒤쳐졌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계명을 주노라" 의 윤리는 어떤가요?
귀와 마음에서 뽑아낸지 오래들 되었습니다.
오직 과거 세상의 맛과 멋과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들 살고 있습니다.
오히려 여기서 낙오될까 전전긍긍하고들 있습니다.

더한 고민은 이럼을 고민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주가 쓰시겠다하라"
"네 이웃을 네몸처럼 사랑하라"의 서신서는 묵살되어 윤리가 없습니다.
하긴 애당초 복음서를 믿지않는데 사도행전의 성령역사를 어찌 쓰겠으며
서신서를 순종하겠습니까? 그러니 묵시록의 꿈도 없습니다.
이 문제가 곧 나의 문제입니다.

추가된 고민은 하나님의 위임을 받들어 주의 말씀을 설교한다면서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설교'하지 않고 '사람에 대하여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 초대교회와 청교도 신앙은 고사하고 100여 전의 신앙자태와
너무 다릅니다. 목사도 설교도, 그래서 나도,

오후내내 이 고민을 갖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각 교단마다 총회를 하며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을 한다는데,
아마 이런 고민들과 해결책은 없을 것 같습니다.

주여, 약속하신 주 보혈의 흔적을 보소서
그 흔적은 내가 보는 피가 아니잖습니까?
은혜의 구원을 주셨사오니 새계명을 준수하는 사랑주소서!

출13:22) 낮에는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