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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고 삽시다. > 목사님칼럼

밥먹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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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8-15 22:17 조회 4,00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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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위해 사나? 살기위해 먹나? 를 굳이 따질 이유는 없습니다.
백마나 흰말이나 그게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먹지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죽하면 食道樂이 있고 美食家 있을까요?

문제는 밥 잘사던 목사가 잘 얻어먹는 목사가 된데에 있습니다.
폭염이 짙던 지난 달에는 중국 사역자를 잘 환대한 벗을 청하여
시원한 막국수를 대접했더니 이외로 반기어 또 대접했습니다.

지난 주에는 선배목사 부부가 우리 부부에게 밥 사준다며
이곳까지 온 덕에 딸아이까지 맛난 것으로 입맛을 다셨습니다.
그 선배 그 후, 또 초청해 주어 친구랑 다녀왔습니다.
이유인 즉 "이렇게 잘하는 식당에서 먹고보니 생각이 나서 말이야"
그저 이런 마음 씀씀이에 고마울 따름입니다.
바로 그 전에는 방배동 목사님이 오셔서 게장을 사주셨습니다.

그제 저녁에는 가까운데 사는 사업가 친구랑 밥먹기로 했지만
늦은 탓에 차만 마시고 헤여졌습니다. 
누구나 그렇지만 만나는 이가 있고 가는 곳이 있습니다. 
영등포엔 삼겹살집이나 복어집이 있고
광화문에는 샤브집이 있고 방송사 근처에는 삼계탕집이 있습니다.
마포에는 횟집이 있고 여의도엔 순대국집과 볶음밥집이 참 좋습니다.

"밥이나 먹읍시다."는 "얼굴 봅시다."의 반가운 청이며 소통의 메시지입니다.
불편한 사람과의 식사는 맛도 없고 얹히기 쉽상인 까닭입니다.
조식은 이성적 만남이라면 석식은 감성적 만남이기에 유쾌합니다.
중식은 어정쩡한 시간대인 만큼 이 둘이 섞인 듯 합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오신 선교사들을 위한 자리 마련은 그들의 시간 때에,
그들의 입에 맞추곤 합니다.
"밥 먹으러 갑시다." 반가운 소리입니다.
"무엇을 먹으러 갈까요?" 당연한 의사 결정을 위한 질문인데도 주께 미안해 집니다.

밥은 사기도 하고 사주는 데에 얻어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샀으니 한 번 얻어먹어야 한다는 밑계산이 깔린다면
아직 애정은 물론 우정은 아닙니다. 어쩌면 거래 관계가 맞을 성 싶습니다.

문득 얼마 전 강화도에 가서 숯불장어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장어가 먹고 싶어 간 것이 아니라 장어 집의 전도사가족이 그리웠습니다.
"목사님, 여름 전에 방문할께요"했건만 않했기 때문입니다.

함께 밥먹을 이가 있다면 사는 냄새가 나는 즐거움이 있다는 말 입니다. 
중국은 먹는 일이 유독 많이 발전했습니다.
둥근 상에 산해진미를 차려 놓고 친한 이들끼리 왁작지껄 합니다.
반면 일본은 모난 상의, 막힌 공간에 앉아 혼자 벤또를  깝니다. 
우리는 점차로 일본화 되어가는 사회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유감된 일은 우리네의 외식비가 비쌉니다.
그럼에도 만만한데 찾아 "밥먹고 삽시다."
밥먹는 만큼 삶을 퍼올리는 두레박질이 됩니다.
食通 이 話通을 이루어 和通은 물론 化通까지 이룰 줄 믿습니다.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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