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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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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2-16 14:47 조회 3,94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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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꿈에 대한 명강의로, 인기와 명성을 얻은 모 여류강사가
자기 발에 걸려 사회적으로 넘어졌습니다.
그렇게 웅크리기를 여러 달,
뭇 사람들의 시선과 뇌리에서 잊혀질 쯤인 요 며칠 전에
이젠 꿈보다 운명을 말한 책을 출판했답니다.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그 책 소개의 글에는 그녀의 가치관에 변화가 있었음을 시사했습니다.
그랬을 것입니다.
꿈을 말하다가 어느 날 그냥 운명을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머리 깎고 입산 수도하여 승려가 되는 일, 
비슷한 수녀나 나 같이 목사가 되는 일, 솥뚜껑 보고 놀라는 일 등이
괜히 아니라 나름의 사건이, 충격이, 있었듯이 
그녀도 그랬나 봅니다.

TV에서만 본 그녀지만  다행스럽고 고마운 것은
넘어진 채로 있지않고 일어나길 시도한 용기입니다.
과연 전만큼 뛰기도 할까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이는 나중치고 일어나길 시도함, 그 자체만으로도 장합니다.
격려와 지지를 보냅니다.

이젠 그녀가 말한 운명은 어떤 운명을 말함인지 궁금합니다.
빛의 조명이나 회개나 주를 만남이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적어도 내겐 그렇습니다.
사뭇 변명이나 자기 합리화로 그치기 쉽기 때문입니다.
왜 일까요?
주를 만난 모든 이들에게 비슷한 일이 있었던 만큼,
운명은,주 없이는 비관과 운명론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그녀가 앞서 말했던, 무수한 '꿈'도 실제는 갓 말한 '운명'에 속합니다.
아니 '꿈'보다 더 앞선 '열정'이 있다쳐도 그렇습니다.
내 개인의 입장에선 '열정'이니 '꿈'이니 할지라도 신의 시각으론 곧 '운명'이요.
우리네 신앙으론 '섭리'가 됩니다.
이러한 '운명'에서 더 진보하면 '은혜'가 나오고, 더 나가면 '오직은혜'
그 다음 더 나가면 '주', 마지막에 '영생'에 다다릅니다.
그러므로 주를 뵈옵지 못한 운명은 여하한의 운명이라도 논하기 싱겁습니다.
귀는 즐거울지 몰라도 거듭남을 이룰 수 없습니다.

진정한 운명에는 때와 맛이 있습니다.
마치, 어느 과실이 맨처음은 뜳다가 시다가 달다가 아주 달콤하다가
나중에는 웅쿰거린 맛을 내듯이,사랑도 삶도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경험이든 지식이든 신앙이든 장르를 초월하여 그 나름의 단계가 있습니다.
그 단계의 승급은 고난이며 이러저러한 사건인 셈입니다.
그러나 핵심은 주를 뵈옵는 일입니다.
운명의 주관자와 대상은 내가 아닌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깨닫고 믿어야 참됩니다.

유감되게 너 나 할 것 없이 고난이 그치질 않는 이유는,
편견과 아집과 자기경험과 지식이 쉽게 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내가 으뜸이다." "나를 믿는다."하며 외치기에 깨지기는 커녕
단단해 지곤 합니다.

밀가루는 밀의 최상입니다.
희고 고운 가루는 그냥 되질 않습니다.
빻고빻고 또 빻고 마침내 채에서 걸러져서 만들어 지듯,,
인생의 철남도 그렇습니다.

위대한 예술가는, 이 자기 고난중에서 위대한 걸작품을 빚습니다.
고난과 고통을 창조라는 예술에서 승화시킨 승리입니다.
그러기에 알량한 자아의 껍질이 벗겨지고 초라한 경험과 지식이 빻아지고
시간의 채에서 걸려지는 과정은 엄숙한, 필연의 운명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이 여류 강사에게서 장차 '오직 은혜'라는 말이 나올련지?
과연 그 때가 오긴 할련지?
없어도 무방합니다.
운명과 은혜의 주체이신 주님은 누가 인정하고 말고의 여부를 떠나
여상하시고 한갖 논리와 입술의 시시비비로 가리워지거나 결정되지 않을 분이기에,

꿈 다음에 운명이렷다?
보기에는 영생에 이를려면 갈길을 밝히 가야 됩니다.
열정,꿈, 운명, 은혜,오직은혜,주, 영생, 이 단계를 점검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어디쯤 머무는지?
자칭, 의인된 성공자는 나누고 보이기 위한 자기 성공록을 쓰는데 반해 죄인이라는,
가슴을 치는 성자는,성자일수록 참회록을 쓴다니 모방하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욥40:2) 변박하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과 변론하는자는
               대답할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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