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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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서 식사 중에, 부모가 자식에게 이르는 교육을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합니다.
아주 요긴한 교육법이지요.
일종의 소통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그 반대되는 경우는 뭐라 할까요?
밥상머리 상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희 집에선 이러한 방편의 소통이 비교적 잘 이루워지는 편입니다.
어제군요. 곁에서 식사하던 아들이 이렇듯 상서를 했답니다.
"아빠, 설교를 조금만 좌향하세요."
언젠가는 목회를, 조금만 좌향으로 돌면 참 좋겠다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목회가 아닌 설교였습니다.
그러면서 "아빠 설교에는 휴머니즘이 부족해요"
전에는 "아빠 설교는 매니아들은 참 좋겠지만 대중적이지 못해요"했지만,
듣고보니 결국 같은얘기였습니다.
나도 변명했습니다."그게 쉽질않아 아빠 성향의 문제거든.." 하며
더 합리화 시켰습니다.
" 새들도 자기 주파수대로 자기들만의 언어가 있듯이 거듭난 사람은
그런 설교를 들을 수 있어,
영의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하듯이 말도 들리거든"
내 말이 틀리진 않았습니다.
아들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거듭난 사람을 위한 설교도 중요하지만 거듭나게 하는 일도
설교하는 목사에요. 눈 높이를 좀 낮추세요.
아빠는 교수를 하시거나 목사님들께 설교했으면 좋을뻔 했어요.
교인들이 세상사에 힘든데 영적으로 얼마나 생각하겠어요?"
언뜻 생각해도 아들이 옳았습니다.
난 그동안 성도들을 목사처럼 여겼나 봅니다.
이런 아들이 지난 해, 군에서 휴가와서는 "아빠 설교가 그리웠어요.
군에서 듣는 설교는 아빠처럼 내용들이 없었거든요" 했지요.
어찌보면 그 사이 변질돼 배신때린 것 같지만 실제는 그게 아닌,
자신을 위함도 아닌, 아빠의 목회를 염려함이었던 거였습니다.
대견하게 느낀 나중에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수만이는 객관적인 분석과 판단력이 있는 거 같군요"
아내는 "수만이가 그러는데 자기 친구들이 그렇다고 한대요" 했습니다.
아들의 밥상머리 상서는, 김치로 말하면 일종의 맛주문서입니다.
아빠의 고유한 전래 김치맛에다 조미료를 조금 가미해서 대중식당 김치처럼,
모두가 잘 먹는 달달한 김치로 만들어 보옵소서 한 권유였습니다.
더 이상의 할 말을 잃었지만 아들의 장성함을 느꼈고 고마웠습니다.
그러면서 어찌 다른 맛과 좌향으로 돌아야 할지, 난감함에 빠졌습니다.
지금껏, 이 맛을 고수했고 오른손잡이로 살았는데 이제사 맛의 변화와
왼손잡이로 고칠 일이 난처했고, 맛이냐? 건강이냐? 식의 번민도 왔습니다.
마13: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합니다.
아주 요긴한 교육법이지요.
일종의 소통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그 반대되는 경우는 뭐라 할까요?
밥상머리 상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희 집에선 이러한 방편의 소통이 비교적 잘 이루워지는 편입니다.
어제군요. 곁에서 식사하던 아들이 이렇듯 상서를 했답니다.
"아빠, 설교를 조금만 좌향하세요."
언젠가는 목회를, 조금만 좌향으로 돌면 참 좋겠다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목회가 아닌 설교였습니다.
그러면서 "아빠 설교에는 휴머니즘이 부족해요"
전에는 "아빠 설교는 매니아들은 참 좋겠지만 대중적이지 못해요"했지만,
듣고보니 결국 같은얘기였습니다.
나도 변명했습니다."그게 쉽질않아 아빠 성향의 문제거든.." 하며
더 합리화 시켰습니다.
" 새들도 자기 주파수대로 자기들만의 언어가 있듯이 거듭난 사람은
그런 설교를 들을 수 있어,
영의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하듯이 말도 들리거든"
내 말이 틀리진 않았습니다.
아들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거듭난 사람을 위한 설교도 중요하지만 거듭나게 하는 일도
설교하는 목사에요. 눈 높이를 좀 낮추세요.
아빠는 교수를 하시거나 목사님들께 설교했으면 좋을뻔 했어요.
교인들이 세상사에 힘든데 영적으로 얼마나 생각하겠어요?"
언뜻 생각해도 아들이 옳았습니다.
난 그동안 성도들을 목사처럼 여겼나 봅니다.
이런 아들이 지난 해, 군에서 휴가와서는 "아빠 설교가 그리웠어요.
군에서 듣는 설교는 아빠처럼 내용들이 없었거든요" 했지요.
어찌보면 그 사이 변질돼 배신때린 것 같지만 실제는 그게 아닌,
자신을 위함도 아닌, 아빠의 목회를 염려함이었던 거였습니다.
대견하게 느낀 나중에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수만이는 객관적인 분석과 판단력이 있는 거 같군요"
아내는 "수만이가 그러는데 자기 친구들이 그렇다고 한대요" 했습니다.
아들의 밥상머리 상서는, 김치로 말하면 일종의 맛주문서입니다.
아빠의 고유한 전래 김치맛에다 조미료를 조금 가미해서 대중식당 김치처럼,
모두가 잘 먹는 달달한 김치로 만들어 보옵소서 한 권유였습니다.
더 이상의 할 말을 잃었지만 아들의 장성함을 느꼈고 고마웠습니다.
그러면서 어찌 다른 맛과 좌향으로 돌아야 할지, 난감함에 빠졌습니다.
지금껏, 이 맛을 고수했고 오른손잡이로 살았는데 이제사 맛의 변화와
왼손잡이로 고칠 일이 난처했고, 맛이냐? 건강이냐? 식의 번민도 왔습니다.
마13: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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