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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 바뻐, > 목사님칼럼

바쁘다 바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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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3-11-25 16:35 조회 3,99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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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소일거리를 찾는다" 혹은 "소일삼아 한다" 는
말을 듣습니다.
그 삶도 오죽하리요? 마는
이렇듯 소일이라도 해야 시간과 무료를 떨칠 수 있다면
여하한 삶의 낭비입니다.

반면, "바쁘다 바뻐" " 딸래미 얼굴도 못보고 살아요"
"바쁜 나머지 밥도 못먹고 일해요"의 소리도 듣습니다.
언뜻 듣기에는 꽤나 능력있고 열심으로 사는 모양같지만
글쎄요? 조정능력을 상실한 모습 같습니다.
자기 삶에 있어 갑이 아닌 을의 모습 아닌가요?

비교적 소일거리 운운은 노인판에서 듣고
"바쁘다 빠뻐"는 젊은판에서 듣습니다만
아주 흔한 일반적 모습이기에 당연시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요?

옛 가요의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를
참 잘못된 가사라고 혼자 타박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참 잘된 가사라며,
역시, 혼자 인정합니다. 

이 가사는, 들을수록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삶은 제한적인데 과연 어찌 살아야 하나? 를 반문시킵니다.
젊은 날 일만했던 노인들의 타령이라지만
뼈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놀자"만을 삶의 주제로 삼은 가사가 아니기에 알 수 있습니다.

이쯤되면 "메뚜기도 한 철이다" 며 항변하려나요?
우리는 메뚜기가 아니기에
그 한 철만을 위하지 말자고 강변하는 중입니다. 
여행을 하고 문화생활을 하는 등의 여유를 찾자가 아닙니다.
자라는 딸래미 얼굴도 못본다면
밥도 못먹는다면 바쁨의 이유가 없습니다.
목적을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무릇 열심히 산다는 정의는 균형일 듯 합니다.
안팍의 균형, 낮과 밤의 균형, 일과 쉼의 균형, 몸과 영혼의 균형
그럼에도 이를 외면 한체 세월도 모르고 주변이들도 부정하고
조석으로 달라지는 자신도 감지하지 못한체 살아서야 되겠나요?

행여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보이고 싶어 애써 바쁜척 했다면
그래서 "바쁘다 바뻐"를 남발했다면, 과시성 발언이라면
삶의 조정이 아니라 그 정신의 조정을 먼저 해야할 것입니다.

바쁠 수 있습니다.
아주 어쩌다가 이어야합니다.
그러나 아시기 바랍니다. 바쁨이 썩 좋지 않습니다.
과함입니다.
또 다른 부족함은 고사하고 낭비가 됩니다.
어디선가 빨간등이 켜지고 삐이 하는 경고음이 들리는 때입니다.
일단 멈추고 점검해야 합니다.
최소한의 하늘은 보며 가족과 식사를 하는,
나의 나됨을 찾아야 합니다.

착각 마십시오.
"바쁘다 바뻐"는 절대로 능력도 열정도 아닙니다.
이쯤되면 누구든 능력자는 더 더욱 아닙니다.

전6:11)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이 있나니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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