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Home
페이지 정보
본문
언제나 아내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행복해 집니다.
딸아이의 재잘거림은 어떤가요?
장성한 아들의 모습은, 누워자는 모습도 대견합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아내는 벌써 서너차례 "호호호"했고
딸아이는 친구랑 용인 '케리비안 베이'를 갔다 온
소감을 생생히 들려 주었습니다.
아들은 밤샘 공부하고 저 쪽 방에서 아직 뒤척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아들하고 무슨 얘기든 통하니 좋습니다.
나는야, 두 차례 기도한 후 방금은 설교초고를 완성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딸아이는
"이렇게 설교 준비하시는 목사님은 드물거에요"라며
아나로그식으로 준비하는 나를 존경(?)했습니다.
가끔은 생각합니다.
모두가 번다고 해도 빠듯한 살림살이가 되는 고물가 시대에
버는 식구없이 사는 것이 용하기도 하지만 기적도 됩니다.
엘리야가 그랬지요.
극심한 가뭄시대에 '그릿시냇가'에서 마르는 시냇물을 마셨고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그 작은 음식물로 연명했으며
살지 못해서 죽고자했던 과부의 '작은 떡'을 공궤받았습니다.
풍요살이는 아니었어도 행복살이로,
혹은 기적살이로 살았으리라 믿어집니다.
이 모양이 비슷합니다.
쉰세대를 사니 압니다.
"행복은 절대 소유따라"가 아님을,
그럼에도 다수의 착각은 "소유를 늘리면 행복할 것이다" 하여
소유를 늘리기위해 별 별일을 다하지만 행복은 없습니다.
어느 날 보면 건강도 없고 가정도 없고 친구도 없고
후회만 가득합니다.
행복은 화목입니다.
화평이지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과의 화목,
그리고 신뢰있는 가족간의 화목
죄책이 없는,그래서 사망권세가 두렵지 않는 평안이 행복입니다.
마귀는 이 행복을 질투해서
때로는 누구랑 비교시키고 미래의 근심을 이루게하여
낙심도 시키고 두려움으로 몰고가지만
성령님은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불변하신 약속에 힘을 얻도록 하십니다.
불행이 만연한 시대에,우울함이 가득한 시대에
쾌락을 따르는 이 시대에서 "나는 행복자"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우리 집은 "Sweet Home" 라고 진술할 수 있습니다.
감사가 있고 격려가 있고 쉼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지나간 날입니다.
내일은 오지않았습니다.
신의 날입니다.
오늘이 나의 날입니다. 이 날에 행복하니 복된 겁니다.
어릴 때 우리 집이 그랬습니다.
여유는 없었어도 행복했드랬습니다.
편찮으신 집안어른이 약 봉지를 갖고 우리 집에서 며칠 묵으면
낫기도 할만큼, 그래서 일부러 찾을 만큼,
치유가 있는 행복한 집이었습니다.
형제가 많아 좀 부산해도,그 자체도 행복이었습니다.
이 행복은 건강과 함께 주신 하나님 선물입니다.
돈 많고 몸아픈 것 보다 월등히 났습니다.
돈 많고 부부가 각 방 쓰며,애들이 밖으로 도는 것 보다
헐 좋습니다.
독수리는 날개와 발톱을 받았습니다.
호랑이는 잇빨과 위엄을 받았습니다.
소는 뿔과 힘을 받았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 몰아 주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괴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의존적일때 사람답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에 '생령'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만이 자족함 없이
독수리 날개와 발톱에 호랑이의 잇빨과 위엄을 더하고
소의 뿔과 힘까지 더하고 더하려 하여 피곤하고
불행의 늪에 빠지곤 합니다.
주신 것으로, 받은 것으로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없는 것으로 엎어질 듯하나 그 때마다 하나님을 뵙습니다.
너무 더워 불쾌지수가 높아지고 전세계의 불황이 짙어가는 때에도
사는 비결입니다.
행복 이유랍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도 꼬리를 숨기기 보단 흔들고 있습니다.
전11:8)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찌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이 많으리니 그 날을 생각할찌로다
장래 일은 다 헛되도다
딸아이의 재잘거림은 어떤가요?
장성한 아들의 모습은, 누워자는 모습도 대견합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아내는 벌써 서너차례 "호호호"했고
딸아이는 친구랑 용인 '케리비안 베이'를 갔다 온
소감을 생생히 들려 주었습니다.
아들은 밤샘 공부하고 저 쪽 방에서 아직 뒤척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아들하고 무슨 얘기든 통하니 좋습니다.
나는야, 두 차례 기도한 후 방금은 설교초고를 완성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딸아이는
"이렇게 설교 준비하시는 목사님은 드물거에요"라며
아나로그식으로 준비하는 나를 존경(?)했습니다.
가끔은 생각합니다.
모두가 번다고 해도 빠듯한 살림살이가 되는 고물가 시대에
버는 식구없이 사는 것이 용하기도 하지만 기적도 됩니다.
엘리야가 그랬지요.
극심한 가뭄시대에 '그릿시냇가'에서 마르는 시냇물을 마셨고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그 작은 음식물로 연명했으며
살지 못해서 죽고자했던 과부의 '작은 떡'을 공궤받았습니다.
풍요살이는 아니었어도 행복살이로,
혹은 기적살이로 살았으리라 믿어집니다.
이 모양이 비슷합니다.
쉰세대를 사니 압니다.
"행복은 절대 소유따라"가 아님을,
그럼에도 다수의 착각은 "소유를 늘리면 행복할 것이다" 하여
소유를 늘리기위해 별 별일을 다하지만 행복은 없습니다.
어느 날 보면 건강도 없고 가정도 없고 친구도 없고
후회만 가득합니다.
행복은 화목입니다.
화평이지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과의 화목,
그리고 신뢰있는 가족간의 화목
죄책이 없는,그래서 사망권세가 두렵지 않는 평안이 행복입니다.
마귀는 이 행복을 질투해서
때로는 누구랑 비교시키고 미래의 근심을 이루게하여
낙심도 시키고 두려움으로 몰고가지만
성령님은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불변하신 약속에 힘을 얻도록 하십니다.
불행이 만연한 시대에,우울함이 가득한 시대에
쾌락을 따르는 이 시대에서 "나는 행복자"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우리 집은 "Sweet Home" 라고 진술할 수 있습니다.
감사가 있고 격려가 있고 쉼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지나간 날입니다.
내일은 오지않았습니다.
신의 날입니다.
오늘이 나의 날입니다. 이 날에 행복하니 복된 겁니다.
어릴 때 우리 집이 그랬습니다.
여유는 없었어도 행복했드랬습니다.
편찮으신 집안어른이 약 봉지를 갖고 우리 집에서 며칠 묵으면
낫기도 할만큼, 그래서 일부러 찾을 만큼,
치유가 있는 행복한 집이었습니다.
형제가 많아 좀 부산해도,그 자체도 행복이었습니다.
이 행복은 건강과 함께 주신 하나님 선물입니다.
돈 많고 몸아픈 것 보다 월등히 났습니다.
돈 많고 부부가 각 방 쓰며,애들이 밖으로 도는 것 보다
헐 좋습니다.
독수리는 날개와 발톱을 받았습니다.
호랑이는 잇빨과 위엄을 받았습니다.
소는 뿔과 힘을 받았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 몰아 주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괴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의존적일때 사람답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에 '생령'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만이 자족함 없이
독수리 날개와 발톱에 호랑이의 잇빨과 위엄을 더하고
소의 뿔과 힘까지 더하고 더하려 하여 피곤하고
불행의 늪에 빠지곤 합니다.
주신 것으로, 받은 것으로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없는 것으로 엎어질 듯하나 그 때마다 하나님을 뵙습니다.
너무 더워 불쾌지수가 높아지고 전세계의 불황이 짙어가는 때에도
사는 비결입니다.
행복 이유랍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도 꼬리를 숨기기 보단 흔들고 있습니다.
전11:8)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찌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이 많으리니 그 날을 생각할찌로다
장래 일은 다 헛되도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