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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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곳은 언제 어디서나 대세와 실세가 있습니다.
어디 사람 세상만이겠습니까?
동물의 왕국도 매한가지입니다.
심지어 집에서 기르는 개조차도 집안 분위기와 일짱을 압니다.
대세와 실세, 어느 시대나 분야의 주된 힘이기도 하고
인물이기도 합니다.
요즘 같은 시국엔 별별 대세가 다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온갖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세입니다.
미국방송에서 전이 된 것입니다.
우리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세계의 대세가 되었습니다.
정치에서는 여당의 모 여성정치인이 실세입니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써 유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리로 몰리고 있답니다.
교회와 목회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는 목사님이 아니면 어느 장로님이나 권사님이 실세이기도 하고
어느 시절에는 사경회와 심방이 대세였기에 봄가을로 성회와 심방하였고
어느 시절에는 제자훈련이 대세였기에 교회마다 제자 양육이 왕성했습니다.
잠시 전에는 목회 상담이 그리고 알파가 전염병처럼 돌더니
이제는 힐링 목회랍니다.
다음에는 무엇이 대세가 될지 모릅니다.
실제는 목회(牧會)안에 일찍기 다 포함되어 있건만
그럼에도 목회만은 무엇인가 부족하여 더 효과적인 방편을 추구하므로
더하고 더하며 돌고도는 행태가 되었습니다.
유감입니다.
"옛날 어느 가장이 자기 보물을 땅에 숨겼는데 나중에 못 찾더랍니다.
아내가 이유를 물으니 분명 하늘위의 한 조각구름 밑에 숨겼는데 없더랍니다."
바보입니다.
흘러가는 구름인데 잠시 멈추었다고 해서 푯대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이런 바보가 많기에 옅은 대세와 어쭙은 실세가 곧잘 득세하곤 합니다.
대세는 유행합니다.
마치 돌림병 같습니다.
영구적인 것 같아도 찰나에 불과 합니다.
양복 깃이 넓었다가 좁아졌다가 단추가 3개였다가 2개였다가
여성의 치마길이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와 같습니다.
여기에 맞추어 산다는 것은 아주 피곤한 일입니다.
자신을 부각시키기는 커녕 상실한 모습입니다.
역사를 보면 어떤가요? 실세는 언제나 하루살이입니다.
끝이 있습니다. 허망합니다.
지금은 불로초를 찾았던 진시황도 없습니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는 몰락한 이후 꽃집의 점원으로 연명했습니다.
"고인이 되신 모 장로님은 유신시절 실세의 최측근이었습니다.
주군이었던 대통령이 시해되자 하루아침에 몰락했습니다.
세상 떠날 때는 초라한 변두리병원의 병상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깨닫지 못합니다.
부나방이 죽기를 작정한 체 불길로 날아드는 판국입니다.
믿고 따르는 대세와 실세가 나름마다 다릅니다.
권세자가 되기고 하고 많은 돈이 되기도 하고 자기 지식이나 재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그토록 마음먹은 대로 되질 않습니다.
70~80세를 사는 세상살이가 짧은 것 같아도 몇 편의 희비가 돌고도는
대하드라마이기에 결국은 빈손이고 떠날때에는 홀몸이 됩니다.
주님은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의 시조이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모든 사람의 대세와 실세는 언제나 진실과 진리입니다.
성도에겐 주님이시기에 주님께 위탁 아니 위임하면 안전합니다.
이게 주님이 오신 목적이고 위임하는 삶이 기독신앙입니다.
그럼에도 이를 망각하고 시대의 대세를 따르고 없어질 실세를 따르니
교회와 기독신앙까지도 요동칩니다.
눈 크게 뜨고 새 대세나 실세를 찾아 줄서기 보단
오히려 이미 주어진 진리대세와 진실실세를 반김이 좋습니다.
정 여의치 않으면 하늘과 땅의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
제갈 공명 같은 지혜요.
본분과 본질을 지키는 첩경이 될 것입니다.
여하한의 과도한 대세나 실세의 주체가 되려는 야망은 절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뭐든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그렇치 않으면 후회만 생기고 원성만 듣습니다.
민18:1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영한 응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
어디 사람 세상만이겠습니까?
동물의 왕국도 매한가지입니다.
심지어 집에서 기르는 개조차도 집안 분위기와 일짱을 압니다.
대세와 실세, 어느 시대나 분야의 주된 힘이기도 하고
인물이기도 합니다.
요즘 같은 시국엔 별별 대세가 다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온갖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세입니다.
미국방송에서 전이 된 것입니다.
우리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세계의 대세가 되었습니다.
정치에서는 여당의 모 여성정치인이 실세입니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써 유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리로 몰리고 있답니다.
교회와 목회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는 목사님이 아니면 어느 장로님이나 권사님이 실세이기도 하고
어느 시절에는 사경회와 심방이 대세였기에 봄가을로 성회와 심방하였고
어느 시절에는 제자훈련이 대세였기에 교회마다 제자 양육이 왕성했습니다.
잠시 전에는 목회 상담이 그리고 알파가 전염병처럼 돌더니
이제는 힐링 목회랍니다.
다음에는 무엇이 대세가 될지 모릅니다.
실제는 목회(牧會)안에 일찍기 다 포함되어 있건만
그럼에도 목회만은 무엇인가 부족하여 더 효과적인 방편을 추구하므로
더하고 더하며 돌고도는 행태가 되었습니다.
유감입니다.
"옛날 어느 가장이 자기 보물을 땅에 숨겼는데 나중에 못 찾더랍니다.
아내가 이유를 물으니 분명 하늘위의 한 조각구름 밑에 숨겼는데 없더랍니다."
바보입니다.
흘러가는 구름인데 잠시 멈추었다고 해서 푯대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이런 바보가 많기에 옅은 대세와 어쭙은 실세가 곧잘 득세하곤 합니다.
대세는 유행합니다.
마치 돌림병 같습니다.
영구적인 것 같아도 찰나에 불과 합니다.
양복 깃이 넓었다가 좁아졌다가 단추가 3개였다가 2개였다가
여성의 치마길이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와 같습니다.
여기에 맞추어 산다는 것은 아주 피곤한 일입니다.
자신을 부각시키기는 커녕 상실한 모습입니다.
역사를 보면 어떤가요? 실세는 언제나 하루살이입니다.
끝이 있습니다. 허망합니다.
지금은 불로초를 찾았던 진시황도 없습니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는 몰락한 이후 꽃집의 점원으로 연명했습니다.
"고인이 되신 모 장로님은 유신시절 실세의 최측근이었습니다.
주군이었던 대통령이 시해되자 하루아침에 몰락했습니다.
세상 떠날 때는 초라한 변두리병원의 병상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깨닫지 못합니다.
부나방이 죽기를 작정한 체 불길로 날아드는 판국입니다.
믿고 따르는 대세와 실세가 나름마다 다릅니다.
권세자가 되기고 하고 많은 돈이 되기도 하고 자기 지식이나 재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그토록 마음먹은 대로 되질 않습니다.
70~80세를 사는 세상살이가 짧은 것 같아도 몇 편의 희비가 돌고도는
대하드라마이기에 결국은 빈손이고 떠날때에는 홀몸이 됩니다.
주님은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의 시조이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모든 사람의 대세와 실세는 언제나 진실과 진리입니다.
성도에겐 주님이시기에 주님께 위탁 아니 위임하면 안전합니다.
이게 주님이 오신 목적이고 위임하는 삶이 기독신앙입니다.
그럼에도 이를 망각하고 시대의 대세를 따르고 없어질 실세를 따르니
교회와 기독신앙까지도 요동칩니다.
눈 크게 뜨고 새 대세나 실세를 찾아 줄서기 보단
오히려 이미 주어진 진리대세와 진실실세를 반김이 좋습니다.
정 여의치 않으면 하늘과 땅의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
제갈 공명 같은 지혜요.
본분과 본질을 지키는 첩경이 될 것입니다.
여하한의 과도한 대세나 실세의 주체가 되려는 야망은 절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뭐든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그렇치 않으면 후회만 생기고 원성만 듣습니다.
민18:1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영한 응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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