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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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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3-03-19 19:39 조회 4,95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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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자들은 개똥밭에 뒹굴어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답니다.

성경은 죽은 사자보다 산개가 낫답니다.

다른 말 같아도 그 말이 그 말입니다.

결국 신앙이나 불신앙이나 차이가 없는 듯합니다.


방금 문상을 다녀왔습니다.

목회적 문상이 아니라 개인적 문상이었습니다.

나보다 두 살 위인, 20년 전 옛 교회 성도가 별세했답니다.

부음을 듣고 생각이 많았습니다.

오늘 아침, 떠나기 전에도 그랬습니다.

부조금과 저 일원동까지 다녀오기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침 이석증도 도져 어질어질했기에 못 간다 했으나 불쌍한 유족들이 떠올라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이 부음을 듣고 전도서가 생각났고 인생의 출생과 삶과 죽음과 믿음과 천국을 재음미 해보았습니다.

새로운 답은 없었습니다. 정답은 더 더욱 없었습니다.

 


누구든 어느 날 자신이 존재함을 압니다.

이 출생부터 공평치 못합니다.

장애가 있고 없고, 부자든 빈자든, 여하한 그렇게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났습니다.

삶도 그렇습니다. 역시 공평치 못합니다.

결국 죽음도 그렇습니다.


내 의지로,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한 내 삶입니다. 그럼에도 그 삶의 책임을 내가 져야한다니,

또한 그 책임이 영원을 결정한다니, 소름 끼칩니다.

 

별세하신 분은 나처럼 피난민의 후손이었습니다.

가난한 친조모와 친모 슬하의 2남2녀의 형제 중 차남이었습니다.

이 집안의 사연은 지금도 전설입니다.

세세한 것은 생략하고, 고인은 어렵게 상고를 나와 모 그룹회사의 사환으로 들어가

마침내 최연소 사장이 되었고 이른 퇴임 후 사업가로 살았습니다.

여하한 형제 중 제일 형편이 나았고 방배동 교인들 중 으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첫딸은 지적 장애가 있고 그 후 늦게 두 아들을 낳았지만, 아직 어립니다.

아쉽게도 자식하나 여의지 못한 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난, 고인이 생전에 지병이 있어 10년 넘게 투병했음을 몰랐습니다.

별세 10일 전까지 중환자실에서 가쁜 숨을 쉬었을 거라고는 꿈에서도 몰랐습니다.

그의 병이 암보다 더 무섭다는, 폐가 굳어지는 병이라는 것을, 문상 가서야 알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유했기에 다 좋았을 것 같아도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남편을 여읜 부인권사를 보았습니다.

아버지 없는 삶을 살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아들을 앞세운 늙은 어머니의 눈물도 보았습니다.

1류 병원의 영안실과 좋은 관에 안치되는 마지막 그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맞습니다. 정녕 산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습니다.

그러나 산개보다, 죽었을지언정 사자는 사자만의 위엄이 있습니다.

죽어서도 그 위엄이 있었다면 산개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고인이 떠나가면서 까지 믿음의 위엄이 있었음을 전해 들었습니다.

유족들도 달랐습니다.

막연한 북망산이나, 구천을 떠도는 일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확연히 천국에 계심을

확신하고 부활 소망에 위로 받고 있었습니다.

 

삶은 출생부터 알 수 없고, 세상은 온갖 모순으로 가득차고 죽음조차도 불공평하더라도

자기만의 길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해되지 않아도 그 길을 갑니다.

마치 하나님은 이해되지 않는 분이지만 믿어야 할 분이기에, 경외해야 하듯이

내 길을 이해하기 보단 누구와 비교하지 말고 최선으로 가야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 마침내 하나님이

알아지는 것처럼 삶의 길도 그럴 것입니다.

 

입관 한 후 유족들과 조문객들은 꽃 한 송이를 바쳤습니다.

그의 부인은 “여보 사랑했어요. 최선을 다 해주셨어요. 천국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그를 닮은 여동생은“오빠 고마웠어요.” 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공평치 못한 삶의 답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사자의 위엄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것 이였습니다.

 

누구든 공평치 못한 삶을 생각만 하기에는 깁니다.

불평과 원망만 하기에는 너무 짧습니다.

사랑하며 최선을 다 할 때 비록 마지막 죽음조차 공평치 못할지라도 삶은 숭고하게 장식됩니다.


오늘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실감했습니다.

어느 덧 10대의 소녀는 30대가 되었고

30대의 집사는 60을 바라보는 초로가 되었고

50대의 권사는 70을 넘긴 파파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저들도 나도 언젠가 입관되어 바라만 보는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 때 아름다운 마지막말을 듣고 싶습니다.

사자의 위엄을 죽어서도 남기고 싶습니다.

“여보, 사랑했어요. 최선을 다해 주셨어요.”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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