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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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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2-05-24 11:46 조회 4,86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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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 선교사 4인 가족이 곧 귀국하시는데 묵을 숙소가 없는가 봅니다.
이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 여기저기 타진을 하지만 딱히 없습니다.
마땅한 곳을 찾아, 보다 나은 곳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숙소가 자체가 없습니다.

이 형편을 아내와 의논하니 "우리가 들어온다고 하면 어디서 묵을 수 있겠나요?
친정도 시댁도 형편이 않되는 경우와 같지요"하며 걱정했습니다.

궁리 끝에 어느 목사님사택의 지하 방이 생각나 전화했더니
그곳은 일찍부터 오갈데 없는 목사부부가 계시답니다.

이처럼 묵을 곳 없으신 선교사님네를 생각하니
갑자기 내가 처량해지면서 슬퍼졌습니다.
집에는 가야되는데 차비없는 신세같았습니다.
이쯤되니 "인자는 머리 둘곳이 없도다"하신 주님도 상기되었습니다.

머리되시고 주인되시는,주님이 이처럼 딱한 형편에 계셨으니
세월과 지역은 달라도 그 종들까지 그래야 되는가 봅니다.

오실 선교사의 딱한 소식은 어제 접했습니다.
앞서 지난 주간에는 중국에서 15년의 고아원사역을 마치신 후
곧 추방될 선교사부부를 만났는데 이들 역시 귀국후 살곳이 없어
 "잘할 수 있는것이 운전이니 용달차 운전이라도 몇달해서
방 한 칸이라도 장만해야지요.15년간 떨어져 있다보니 친구도 형제도 멀어졌지요."의
우울한 말씀을 들은 터라 귀국 후 거처를 알아보는 참에
또 이런 오갈데 없으신 선교사님 가족의 처지까지  들으니 부담이 큽니다.

낮에는 이 마음 갖고 아내와 길 걸으며 건너편 건물을 가리키면서 소원을 나누었습니다.
"저런 건물하나 만들어서 아래층은 세주고 2~3층은 교회당으로 쓰고
 4층은 우리가 살고 5~6층은 선교사들 위한 안식관으로 쓰면 참 좋을텐데,,,"

믿음은 바라봄의 시작입니다.
바라봄은 소원입니다.
엘리야의 큰비는 손바닥만한 작은구름이 징조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릴때 어머니로부터 들은 말입니다.
지금은 재벌된 집안의, 돌아가신 그 집 할머니가 우리 외할머니와 함께 김을 매면서
"형님, 이렇게 호미질하다가 누런 금덩이가 툭걸리면 좋겠소"하셨답니다.
그 할머니,결국 바라던 금덩이보다 더한 재벌을 후손으로 두고 생전에 호강을 누리셨답니다.
불신자에게도 이런 기적이 있거늘 하물며 우리에게 왜 없겠습니까?

그래서 들어오는 길에는 매물나온 집의 값을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말이 좀 샜습니다만
선교사가 2만명을 넘겼다면
총회나 아님 범교단 차원에서 선교사 안식을 위한 사업을 벌써 실현했어야 합니다.

밥퍼목사님이 그랬다지요.
언젠가 가난한 이웃의 치료를 위해 카톨릭재단의 병원을 찾아 무료치료를 부탁했더니
"개신교는 예배당만 많이 지으면서 여태 이런 병원 하나 운영 못하느냐?"
결국 이 핀잔에 자존심 상한 그 목사님 마침내 무료병원을 짓게되었답니다.

지금의 내가 꼭 그 핀잔 들은 심정입니다.
자존심이 상합니다.오기도 작용합니다.

신학교는 학비 받아 교육시키고
총회는 상회비 받아 운영하며
목사,선교사를 키워낸다지만 이후의 대책이 없습니다.
아직은 어디든 책임을 질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총회가 교회 개척하기보단 목사 개인이 사비를 털어 교회를 개척하고,
선교사도 개인이 선교비를 마련하는 상황입니다.
아직은 목사장립과 선교사파송만 전부이고, 후원은 적게 혹은  없게 되었습니다.
목사,선교사의 숫자나 앞세울  뿐 후속 대책이 분명하지 않으니
개척한 목사도 힘들고 밖에 계시는 선교사들의 고통이 여간 아닙니다.
여지껏 한마디로 "알아서 하라."식 이었습니다.
이처럼 "능력되면 개척하고 파송받아라"하다 보니
가난한 총회의 목사와 선교사는 물론 능력없는 성직자는 총회와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호나 지원혜택도 받지못한 체 사회의 사각지대에 내몰려 있습니다.

가난한 개척 교회목사는 견디다 견디다 파산에 이르고
외국에 나가 계시는 선교사들은 고유한 사역보다 후원금마련을 위해
자칭 '국제 앵벌이'로 전락하며, 계속될 선교비확보를 위해 '선교 사역보고서 작성'에
선수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총회의 가난과 무관심이,특히 선교사들에게는
객지라는 전장에서 죽어라하며 싸운다 왔는데 환영과 안식은 커녕
잠잘 곳도 없는 판국이 되었으니 이 모양,심각한 사기저하로 미칩니다.
선교사이기에, 주의 용사되어 참  다행입니다.
만약 진짜 용사고 총칼든 군인이었다면 혁명 일어날 일입니다.

이런 상황의 저변에는 개교회주의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후원이든 대책이든 정책이든간에 사업에는 재정이 따라야하는데
회원된 교회들이 그만 인색한 탓입니다.
개교회를 위해선 빚내어 쓰면서 연합회나 공동의 사업에는 몸사렸습니다.
진실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바르지 못한 청지기관 까닭입니다.
성도들에게는 "심는대로 거둔다"고 하면서 교회는 그 가르친대로 심지않습니다.
하늘을 지향한다면서 반대로 땅을 지향했던 겁니다.
이 모순이, 양식있는 성도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도록 촉발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개교회도 이해가 되는 것이 전체교회의 75%가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미자립교회입니다.
오죽하면 교회가 빚을 냅니까?
안정된 교회는 이러저러한 책임에 부담이 큰 것도 맞습니다.
결국은 시기상조로 결론됩니다.

이제는 이 뜻을 품고 대동단결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책임있는 신앙,행동하는 신앙으로 십시일반하면
지방이 자기 지방학생들을 위한 '학사'를 짓듯이
선교사 안식관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주의 백성들을,선교사를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누구를 통해서든 심지어 까마귀를 통해서라도 입히시고 먹이우시고 잠재우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통해서,
그리고 나를 통해서 이 귀한 일이 진행되고 성취된다면 내게 복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을 위한일에 합력하는 것,그 일 역시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복음이 우선되도록 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아는바지만 선교사를 위한 안식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소모를 좀 줄이고 총회적이든 범교단적이든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이 일에 쓰임받기를 소원하며 빈주먹이라도 나 역시 마음을 품습니다.
한소년의 자기도시락 포기가 주님 손 안에서 오병이어 기적의 단초가 되었듯이,

하나님은 사람이 하지 않으면 나귀를 통해서 하시기도 하고
때론 돌들이 소리지르도록 하십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안식관을 범교단으로도 총회도 교회들도 외면한다면
무명의 작은 집사를 통해서도 하실 겁니다.
벌써 이러한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큰소가 못하면 작은소가 나타나 감당해 냅니다.
모세가 죽자 여호수아가 대신 이룬 모습입니다.
언제나 누구나 쓰임받을 때가 영광이기에 이때 충성해야 합니다.


사32:20) 모든 물 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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