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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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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0-11-20 09:31 조회 4,92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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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간판입니다.

굳이 관상학이나 골격학을 들먹이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온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병색이 있다,병원에 가 보라

무슨 걱정있어? 얼굴 빛이 왜 그래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구나 쯧쯧,얼굴이 상한 것을 보니,

일반적인 경우,얼굴이 이 모든 것을 웅변합니다.

원판불변의 법칙에 의해서,생긴 것을 어쩌지는 못합니다.

저 같은 경우,얼큰입니다. 또한 유독 얼굴색만 검은 편입니다.

이 모양을 어쩌겠습니까?

그저 주의 뜻이거니 할 뿐입니다.

세월따라 자연스레 달라지는 것도 감수합니다.

많던 머리숱이 줄었습니다.

주름도 늘었습니다.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누구는 부분가발을 쓰자고 하고,보툭스도 맞자고 하지만

아직은 사치인 것 같고,억지인 것 같아 사양하고 있습니다.

문제는,"예목사님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하는 경우입니다.

그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그만 굳게 다문 입 모양이 되었습니다.

거울에 비친 모습에는, 수심도 있는 듯해서 싫었습니다.

공자가, 40세는 "자기얼굴에 책임을 지라" 했습니다.거울을 보면, 여하한 "책임을 지고 있는 제얼굴이 맞습니다."

좋은 얼굴빛도 책임이지만,굳게 다문 입도 책임의 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얼굴근육을 풀어 주곤합니다.

주로 설교전에 그렇습니다.

또 가끔은 크게 웃어 주곤합니다.

사람을 만나기 전의 경우입니다.

소리내어 찬송하는 것도 참 좋습니다.

찬양인데도 화같은 내면의 마그마가 해소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그대로 잠시일 뿐입니다.

생활 자체가 달라지지 않는 한,또 여전할 뿐입니다.

방금전의 내 얼굴은 다소 부었습니다.

기상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덧 수심의 빛은 다소 가신 듯 합니다.

많이 내려 놓았기 때문일 겁니다.

문득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조차 '천사의 얼굴 같았던 스테반의 얼굴'을

상상해 봅니다.

얼굴모양보다 빛을,그 원천의 힘된 비결을 본받고 싶습니다.

가장되거나 과장되지 않은,그 얼굴 빛

그리고 그 난리중에 하늘을 우러 볼 수 있는 눈등

생활이 파국을 맞이해도 영혼이 살아있으니

일그러지는 얼굴에서도 희한한 미소와 빛이 있었습니다.

결국은 믿음인데 이 믿음이 부족합니다.

성도의 얼굴,목사의 얼굴,이러쿵 저러쿵 뭐라 말을해도

자기 내면의 믿음얼굴입니다.

잠14:10)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예하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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