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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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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1-04-19 12:40 조회 5,00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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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 사람,종자가 그런가 봐"
더러는 이 말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적어도 반 백년을 넘게 살고
수 백사람을 겪어 본 목회자로써, 이 '종자론'의 소신에는
아직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흔히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고 합니다.
어찌 식물 뿐이겠습니까?어찌 하등동물 뿐이겠습니까?
우리네도 그러하다고 믿는 겁니다.
피부색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용모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성품입니다.
나의 성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게 아닐진대
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그 윗대의 친가와 외가등의 합작품입니다.
그래서 내가,내 삶을,지금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느 영화의 주인공 독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만 있대
좋은사람과 나쁜사람,좋은사람은 좋은행동을 하고 나쁜사람은 나쁜행동을 한대"

이 말을 공감합니다.신앙을 떠나서 교육과 환경을 떠나서
본질이,종자가 결정짓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에 합당한 속담이나 격언도 제법있습니다.
'세살적 버릇 여든 살까지 간다.'
'자기버릇 개 못 준다'
물론 버릇에 대한 지적이지만,실제 이 버릇은 종자의 성향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친구를 보아라."
같은 종자,같은 성향끼리의 연합성도 웅변합니다.

이 종자를 누가 바꿉니까?
콧대는 높이고 머리염색은 해도 이 본성는 어쩔 수 없기에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안되는 사람마음 모른다.'는
푸념이 이미 공론화 되었습니다.
교양으로, 맵시로, 좋은 차로, 아니 훌륭한 매너로, 잠깐 위장이나 과장이나
아님 가장은 할 수 있을지언정 바꿀 순 없습니다.
그래서 믿었던 사람으로 말미암는 상처가 큰 상흔으로 자리하게 되는가 봅니다.

교육이나 훈련이나 신앙등이 어느정도의 개량이나 개선이 있슴을 압니다.
그러나 본성의 '거듭남'은 자신이나 세상의 힘으론 불가능한 줄 믿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이 왜 그래" 혹은 "그 사람이 그랬어?" 등은 '거듭남'이 아닌
개량이나 개선을 높이 평가한 이유일 겁니다.

종자가 바꾸어지는 일은, 창조주의,하나님의 소관입니다.
주 예수의 복음이 씨앗이 되고,성령하나님이 거듭나게 하실 때 만이
비로서 온전히 달라지는 새 창조가 되는 줄 믿습니다.
이 일은 새로운 경험이기도 합니다.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하라"함이 아닌 "되어짐"의 충격입니다.

현대교회의 이 거듭남의 사건이 자꾸만 줄어드는 것이 위기입니다.
'되어짐'이 없는 가운데 '하라'만 촉구되니 문제발생이 심각해 집니다.
'영의 사람'보다 '착한사람' 만들려는 노력이 앞서는 듯하여 걱정도 됩니다.

거듭남은 신비입니다.
거듭남은, 내가 알고 남이 압니다.
새 성품을 이루는 예수님의 생명이 내게 주입되는 신기한 일이기도 합니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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