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은 치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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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목사가 아픕니다.
뼈가 많이 아픕니다.
수년전에도 진단을 받았지만 최근에 또 받았습니다.
의사는 나의 결과를 보고 "혼란스럽다"고 했습니다.
여성들에겐,폐경기니 뭐니 해서 그럴 수 있는데
남자에게는, 특별히 제 나이에는 이럴 수가 없답니다.
고통없이,자각증세없이 앓는 병이 골다공증이랍니다.
얼마나 심각하냐면 70대이상의 수치랍니다.
넘어지다 팔을 딛으면 팔목이 부러지고 주저앉으면 엉치뼈가
으스러질 정도라며 특별한 조심을 당부했습니다.
치료라는게 완치는 없고 더 이상 나빠지지않도록 까지가
최상이랍니다.
그 후,난 그만 부서지는 남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들도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가 인사말이 되었습니다.
근육운동을 할 요량으로 역기나 아령을 들고 싶어도
"혹시 이러다가 뼈가 무너지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의사의 말인 즉, 대학병원급의 순환기과에서 이유를 찾아 보랍니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낡아진 겁니다.
소견서에는 "노동력 상실등이 왔고"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함께 사는 아내도 이 골다공증이 왔습니다.
이 덕에 함께 약을 먹으니 부부가 사이도 참 좋습니다.
다른 병은 마음의 병인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 보이진 않았지만 "전화 울렁증"입니다.
그동안 채권회사를 대하다 보니 생겼습니다.
잠시 진정된 생활속에 안정되었는데 그 진정이 와해되어 불안정이 올 것 같으니
그만 울렁증이 또 도진 겁니다.
오전 9시 부터 오후 5시까지,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당분간은 또 앓아야 할 한시적 질환입니다.
마지막으로 생활의 병입니다.
늘 사는문제로 말미암는 병입니다.
흔히 "생활고"라고 합니다.
옛말에 "만석꾼은 만가지 근심이 있고 천석꾼은 천가지 근심이 있다." 했는데
십석꾼도 못되는 내가 백석꾼의 짐을 졌나 봅니다.
언젠가 교육방송을 보니 생활고가 동물의세계에도 있었습니다.
'산자의, 삶을 위한 삶의 대한 삶의 고충' 뭐 이렇게 정의 내릴 수 있겠습니다.
혼자만이 아닌 대다수가 겪는 병입니다.
물가가 높고 반대로 행복지수가 많이 떨어지는 우리나라는 이 환자가 많답니다.
저 많은 아파트는 대출때문에, 실상은 은행집이요
굴러다니는 새차들도 어찌보면 대다수가 역시 깡통 차들이요
활보하는 남녀노소가 나름의 생활고를 품고 산다는 것쯤은 압니다.
굳은 표정이,분주함이,인색함이,노래방에서의 악씀이 다 이 병의 증세 아니겠습니까?
이런 경우 심리학이나 정신과에서는 뭐라하는지 몰라도
이외적으로 심각한 환자도 많습니다.
인생의 중년에,또래의 누구는 장관을 하며 친구의 친구는
대통령실장을 하며, 어느덧 후배도 국회의원을 한다는데 목사로써 목회한다며
아직껏 버벅거리고 가정사에는 가장으로써 집안사에는 맏이로써
선뜻 나서기 보다는 나 몰라라하는 일이 많으니 염치도 없고 이래저래 속이 상합니다.
교회당을 지금의 임시 처소로 옮긴 후 속을,마음을 다시 잘 추스리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지치고 상했던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연길에 가서 좀 쉬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까지 가져 보았습니다.
그러나 거기는 춥고,외롭고,교회를 비워야 되고 경비도 따르고 등의 이유로
이 땅, 내 집에서 쉬고자했습니다.
따뜻하고 가족이 있고,좋지요
몸만 쉬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일과 만남도 있기에
치료든 쉼이든 최적지이라 여겼던 겁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쉼은 커녕 집안적으로 정신 사나운 일만 있었고 울렁증까지 도졌습니다.
나 치료해야 됩니다.
예목사는 환자입니다.
몸만 편안히가 아닌, 마음도 평안하도록 잠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몇달만,, 예목사는 지금 수양 중입니다.
시109: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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