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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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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2-02-07 11:40 조회 4,57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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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교회이기에 한 두교인이 결석하면 휭하니 표가 납니다.
이런교회가 얼마전 전도사님이 전근가시고 이제는 임집사님네가 또 못나오시게 되었으니
서운하며 남아 있는 교인들이 위축될까 염려됩니다.

그러나 한편 나름의 자리를 잡아 희망을 안고 떠나니 저으기 기쁩니다.
특별히 임집사님네는 형편이 아주 어려운 중에 우리 모두의 기도응답이라 할 수 있는,
일이 되어 떠나게 된것이니 서운함보다 감사와 축하가 앞섭니다.
그동안의 답답함이 마치 목사의 부덕함의 소치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본래 교회는 앞문으로 박수속에 들어온 교인들이 뒷문으로 인사없이 떠나기도 하는 곳입니다만
우리에게는 아직 먼 얘기입니다.
전도사님네도 그렇고 임집사네도 그렇고 다 박수받으니 저들도 훌륭하고 교회도 성숙한 것입니다.

만남은 여하한의 헤어짐이 있습니다.
죽어 헤어짐도 있고 원수되어 헤어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재회를 기약한 아쉬움의 헤어짐은 아름답습니다.
그제는 수년 전 개척차 떠난 목사님 내외와 얼마전 떠난 전도사님 내외,
그리고 우리부부가 임집사님네 식당에서 만찬을 했습니다.
이유야 무엇이든 아름다운 이별의 재회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임집사님네도 미래에서 기쁘게 재회할 것입니다.

식당운영차 지방으로 떠나시는 집사님네께 아쉬움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잘 된일이라며 격려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의 적은 옮기지 말고 십일조와 선교헌금은 올려 보내세요"했습니다.
이런 목사의 말에 "아이들을 보러 올라 올 때에 꼭 들리겠습니다"그런 집사님이 되었습니다.

목회는 바로 이런 겁니다.
들어오는 교인으로 기뻐하고 떠나가는 교인들로 서운해 한다면
진작에 웃다울다 지레 죽게 될 것입니다.
아직 교회는 자리를 못잡아도 교인들이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에 보람을 갖습니다.

참 최근에는 박찬기성도네도 힘든 지경에서 살만한 집으로 옮겨갔습니다.
비록 내집 장만하여 간것은 아니며 부친의 농사창고를 개조한 집으로의 이사였지만
역시 우리 모두의 기도응답이기에 주님이 주신 '프라자펠리스'로 입주한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두분 권사님의 아들들이 대학졸업 전에 떡하니 기업취직이 되었습니다.
실력만으로 된일이겠습니까 ?
이와 같은 모양이 일어 난것을 보아 매우 고무적입니다.

우리 동네에 옷 수선하시는 모교회의 집사님이 계십니다.
그 집사님의 말인 즉 "우리 교회는 교인들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우리 목사님이 아주 힘들어 하세요"라며 제 아내에게 말했답니다.

이쯤에서 교회의 진정성을 되짚어 봅니다.
교회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건물입니까? 사람입니까? 재정입니까? 주님의 역동성아닌가요?
이러한 역동성이 아니 미동이나마 지진계에 미세한 지진진동이 감지된 것처럼
일찌기 감지되었기에 감격할 뿐이랍니다.
교인들이 떠나는 일에 대해 심각함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감사함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답니다.

그렇습니다.
억지가 아닙니다. 수용이나 체념도 아닙니다.
그동안 함께 했던 교인들이 잘되니 그저 좋아서입니다.
그동안 두손들어 간절히 빌었던 이러저러한 축복이 성취되었으니
이보다 더한 은혜가 있을리 만무입니다.
이 징조는 또 채워지는 좋은징조라고 믿습니다.
당분간 줄어든 교인들과 예배해야 됩니다.
이를 반기는 목회자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믿는바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새옹지마가 있다면 목회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워주심이
정녕 있기에 달려갈 길을 달려갈 뿐입니다.

왕상18: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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