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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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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09-12-09 23:36 조회 5,23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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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지나노라면 벽면과 게시판에 온갖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남성의원, 보청기, 아기스포츠단
흑돼지삼겹살, 속옷세일등
너무 많아 볼수도 셀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교회도 이런 저런 현수막을 겁니다
목사인만큼 교회현수막은 유심히 봅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내일을 믿습니다.'
몇달전에 본 모교회의 현수막입니다.
세상이 어렵다보니 소망을 가지라는
격려같습니다.

이때 곁에 있던 불신친구조차 이 글에
의문을 가졌드랬습니다
"성경에 좋은 구절이 많은데 왜 꼭 저랬을까?"

*'타종교인도 환영합니다.'
ㅇㅇ기도회라는 큰 주제 아래의
작은 내용이었습니다.

취지는 이해합니다.
특별한기도회인 만큼
타종교인도 초청하여 전도하는 동기로
삼겠다는 의미일것입니다.

그러나 신학적 오류가 생깁니다.
우리네 기도가 무엇입니까?
개나 소나 다 하나님께 할 수 있는것 입니까?
그것보다는'초교파로 참석할 수 있습니다.'
했다면 참 좋았을겁니다.

*이제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행복시작'이라는
꽃분홍색 현수막도 말하고 싶습니다.
성경에서 누누히 강조하는
'예수그리스도 함께 하는 고난'은 생략된체
그후의 행복만 부각 시킨 것입니다.

흔히 '기만'이니 '사기'니 하는 말을 씁니다.
나는 쉽게 써도
막상 내가 들으면 화나는 소리입니다

옛컨대 겉포장에는 500g이라고 했는데
실제 450g만 들었다면 무엇입니까?
아니면 평소보다 싼값의 상품이 있다고
해서 들어갔더니 이미 다 팔렸다고 한 경우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 주님은 사실과 진실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진실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사실'이 붙습니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쉼을 주겠다.
쉼을 얻을수 있다,하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말은'아'다르고'어'가 다르답니다.
특별히 성령님조차 이러한 단어와
순서를 잘 선택하고 구별하여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목사가 '말'이나 '글'을 잘하거나 쓸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구별은 해야합니다.
아니 할수 있어야 합니다.

혹 이글을 읽는 누구는
"별소리 다한다."고 할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속의 교회가 존재하고
전도하며 부흥하려면 세상용어와
세상방식으로 접근해야 할것이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묻고 싶습니다.
교회의'거룩'은 무엇이며
어디에서의 '거룩'이냐고..
또한,술먹는 사람을 전도한답시고
교회당에 술집을 꾸미고
노래방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싸이키조명이
있어야 되느냐고..
하긴 벌써 그런류의 교회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흡연실로 두고,
또한 목사님 축도후에 메아리 음을 넣어
"있을지어다~아~아~아"하여 신령하게
느끼도록 한다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머지 않아 목사님 등단 할때
강대 양편에서 흰 연기가 올라오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지구의 모든 대륙은 본래 하나 였다지요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조금씩 벌어진것이
지금은 수천km가 되었답니다.

댐이 한번에 무너지는것 같아도 실제로는
속에서 오랫동안 조금씩 무너진 결과랍니다.

옛 바로는 모세에게 출애굽의 타협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때마다 모세는 "불가하나이다"를 외쳤습니다.
협상에 서툴러서가 아닐 것입니다.
결코 외눈박이라서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현대교회는,옛사도행전 교회에서
아니 우리네의 초대교회에서 조차 얼마나
벌어졌을까요?
왜 우리 선배들은 옥살이를 하고 왜 총알을 받았을까요?
중심을 감찰하신다는 하나님은
왜 금송아지를 만들고 경배했던 이스라엘백성에게
진노하셨을까요?
이들의 중심은 하나님경배 아니였나요?
왜 흔들리는 볍궤를 손으로 붙잡은 웃사를 죽이셨나요?
그의 중심은 법궤보호 아니였나요?
우리의 기독신앙은 계시대로입니다.
중심과 믿음은 행동과 행위로 증명됩니다.
그래서 말과글에도 믿음의 구별이 드러나야 됩니다.

교회는 교회다움 보다 절대적 교회여야만 하고
목사 역시 목사다움 이상으로 정녕 목사여야 합니다.
무엇이 효율적이고
무엇이 효과적이기 보다는
무엇이 진리인가?
아니 내가 그 진리에 있는가를 먼저 가늠해야 할것입니다.

그래서 걸었다가 떼어버리는 하찮은 현수막 하나에도
신경을 쓸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8:39)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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