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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하신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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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0-01-02 15:06 조회 5,18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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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빠른채, 참 좋아졌습니다.

구주성탄이니 신년이니 하는 인사를

휴대전화 문자로도 하기 때문입니다.

목사인터라 구주성탄때에는 E-메일로도

카드를 받았습니다.

그후,며칠이 지난 지금,아직은 신년벽두인지라

여전히 인사가 들어 옵니다.

문자도 좋고,E-메일도 좋은데

그만 난처한 경우가 있습니다.

모두가 경험했겠지만

동일인으로써 중복되어 오는 경우입니다.

이보다 더 난감한것은 누가 보낸것인지를

모르게 '이름없이' 온 경우입니다.

문자의 경우,문자로 답을 해주는 것이 예의라는데

발신인을 모르니 수신인없이 인사하기 난처해

본의 아니게 그의 인사를 '씹게.됩니다.

또 다른것은(생각해 보아야할 사안임)

모두가 "복 많이 받으세요"하는 인사말입니다.

복은 누가 주길래?

또 많이 받고자하면,받을 수 있는것인지?

그래서 말을 바꾸었습니다.

불신자에게는 "복많이 지으세요"

성도에게는"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가운데로 걸어 가면~"의 찬송가 가사로 대신 합니다.

올해도 그랬습니다.

세월이 어떻든지,빠르고 편리함보다는

카드를 사고, 인사말을 쓰고, 우체국에 가서 부치는등의

그 수고가 참 인사답습니다.

물론 이제는 카드도 몇장 못 부치지만,

선배들에겐 그랬고

병중에 있는 지인들께는 '고난을 이긴'경건서적을 보냈습니다.

그러고보니 인사에도 본의 아니게 구별이 되었습니다.

약소한 선물이라도 사들고 가 세배드려야 할 분

날짜전에 카드라도 보내야 할 분

E-메일로 인사할 분

문자로 인사할 분

미안하지만 이름몰라 '씹히'는 분 등

문득 소시적일이 생각납니다.

우표를 잘못 붙여 보낸 편지가 내게로 되돌아 왔던 일

편지 보내 놓고 "지금쯤은 받았을까?"하여

답장 고대했던 졸병생활등

문명이 정서를 메마르게 하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어느덧 우리네 관계마져도 삭막하게 만들었습니다.

늦어도 좋습니다.

좀 편리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온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어제는 외로움의 날새는 친구에게 다녀 왔고

방금전에는 후배들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살피고

격려했답니다.

잠25:25)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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