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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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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0-02-09 18:36 조회 5,33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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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과 중국이 갈등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자기네의 국익이 달린 입장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뿐만아니라 세종시로 말미암는 여,야의 갈등.

또 같은 여권안에서의 친이와 친박의 갈등.

역시 나름의 입장때문 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우리의 입장을 버리고 하나님의 입장에

맞추어 따르는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불신앙은, 하나님앞에서 자기입장의 큰 주장인 셈이고

그치지 않았던 많은 전쟁들은 판이하게 다른 자기입장들의 충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땅위의 서로 다른 입장들은 영원하지도

결코 절대적이지도 않습니다.

죽어도 못믿겠다. 하던 이들이 회개하며

세계1차,2차대전을 치룬 적국들이 지금은 여러 모양의

수교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그 치열했던 전쟁은 괜한 일이고

그때 죽은자들은 피차 타협치 못한,

쎈 자기입장들의 희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15년전에는 네편,내편 가른체, 싸우고 갈라 서서

최근까지 지루한 재판까지 하던 교회가 ,

이제는 세월 가고 보니 사안은 여전해도

화합하고자 하여 다시 들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지금까지의 진리싸움이라며 갖었던

등등한 기세는 해프닝이 되고

쏟았던 많은 시간과 비용은 낭비가 된 셈입니다.

이럴 수 있었다면 "세월이 약이다."하여 기다림이나

될대로 되라는 식의 운명에 맡김보다

좀 더 일찍이 화해를 모색하고

치열하게 다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의다툼,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다툼 이후, 이혼할 것 아니라면

빨리 화해하는 것이 현명하고

화해할 거라면 다툼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오늘 서로의 입장차이로,상처받고 괴로워하는,

두 부류의 친구를 만났습니다.

한 친구는 ,어릴때부터 따뜻하지 못한 아버지로 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80넘은 그 아버지를 거부하는 50중반의 아들입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먼저 사과하거나

아님 아들이 아버지께 상처받았던 바를 먼저 말씀드리면

곧 풀릴 것 같은데 그렇게하지 않은체 지금껏 살고 있습니다.

이 탓에 이 부자는 여늬부자와 다르게 사랑이 없고,

아들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모르긴해도 아버지도 그 아들로 인해

아들처럼 고통속에 있을 겁니다.

만약 이 불화를, 이 매듭을 풀지 못한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다면 어떨까요?

아들은 이 매듭을 간직한체 자기 죽도록 갖고 살아야 할테니

비극은 연장됩니다.

다른 부류는 ,제가 잘아는 목사님들의 얘기입니다.

Y목사님은,A목사님의 아들 청첩을 받고 축의금을 들고 참석했답니다.

이제는 그 결혼에 참석하신 Y목사님의 딸 결혼식이 있어 청첩을 냈건만

웬일인지 A목사님은 참석치 않았답니다.

Y목사님은 섭섭하여 내게 말씀했고

난 A목사님께 Y목사님의 섭섭해함을 귀뜸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A목사님의 반응은 좀 달랐습니다.

부득이한 형편때문에 못갔는데,

그 후 Y목사님으로 부터 야단전화를 받았답니다.

이 일이 충격되어 다른아들의 결혼에는

아무도 청첩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Y목사님께 섭섭함이 있었습니다.

위와 같은 일들은 누가 들어도 다 이해가 되는 사정입니다.

주변의 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통의 기술이 없어, 상대방을 헤아리지 못하니

피차간 좋은 관계임에도 요원한 사이가 된겁니다.

물론 중간에서 내가 화목케하는 역할을 잠시 했지만

언제쯤 원상태가 될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을 살아 가는 우리의 입장은 다 다릅니다.

그러나 같은 시대에서,같은 문화권속에서 살기에

실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흔히 입장차이라고 말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상대방을 헤아리지 못하거나 믿어주지 못한

내 불신과 고집과 좁은 소견탓이요

자기만 앞세운 자기사랑의 비뚤어진 억지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하는 말 있습니다.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 맞습니다.

시어머니도 며느리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시아버지보단 며느리를 더 이해할 수 있으련만

현실은 그렇치 않습니다.

전도사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부류는 누군가요?

전도사사모가 아닌 목사입니다.

그런데도 그렇치 않는 목사도 있습니다.

다 자기입장만 중요시 여기는 또 다른 죄성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모두가 자기입장만이 아닌

상대입장을 헤아리는 세상을 생각해 봅니다.

노.사간의 헤아림, 여.야간의 헤아림,부부간의 헤아림

목사와 교우간의 헤아림등

어떨까요? 악한시대이기에 헤아림을 빙자하여

반대로 치고들어 오는 일들이 많을까요?

행여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어긋날까요?

세월앞에서는, 죽음앞에서는, 고집도, 명분도, 실리도,

다 별것 아님을 알텐데,

그땐, 늦어 후회만 남을 텐데,

소통의 여러 기술중, 대화도, 진솔함도,상대의 신뢰도 좋지만

헤아림이야 말로 가장 좋은 방편일 겁니다.

주님이 권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화평케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전10:1) 죽은 파리가 향기름으로 악취나게 하는 것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로 패하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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