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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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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0-07-10 17:10 조회 4,90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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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얘기를 잘 경청하지 않는이를 '베토벤'이라고 합니다.

베토벤은 듣지 못하는 장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덥고,한창 분주한 때에 교회당의 인테넷과

팩스가 먹통이 되었습니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기에 기술자를 불렀습니다.

전과 다른 새 기술자가 왔습니다.자연 증세를 설명했고

앞선 기술자가 남긴말도 전했습니다.

"또 이상이 생기거나 새로운 기술자가 오면 1층 단자가

고장이라고 하세요"

새 기술자는 내가 전한 이 말을 건성으로 듣고 넘겼습니다.

고장은 3층이랍니다.그러나 애쓰고 수고했지만 수리가 않됐습니다.

결국 1층에 가서야 쉽게 고장을 찾았고 수리했습니다.

새 기술자는 돌아가면서, 처음에는 나의 말을 건성으로

들었다고 시인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자동차 유리가 올라가질 않았습니다.

동네 수리점에 가보니 모터가 고장이랍니다.

모터 교환을 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기술자 역시 내 얘기를 귓등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수리점에 신뢰가 생기지 않아 본사에서 고쳤습니다.

내 말대로 모터고장이 아니라 배선이 절단된 것입니다.

살면서 남의 얘기를 잘 들으면 '팔랑귀'라고 합니다.

소신없다는 뜻입니다.

반면 않들으면,고집 쎄다고 합니다.

무슨 얘기는 잘듣고 않듣고 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술자들은 전문가의 아집이 있어서 인지

잘 듣질않습니다.만약 사용자의 얘기를 잘 들으면

고장을 잡아 내기가 쉬울 겁니다.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경청은,부부간에도,부모 자식간에도,친구간에도 아니

무슨 인간관계든 꼭 필요합니다. 불통이 만사의 근본이유라면

소통의 시작은 잘 들어주는,곧 경청일 겁니다.

목사인 나는 말하는 일에 비해, 듣는 일은 능하질 못합니다.

성질까지 급해서,한마디를 해 오면 열마디를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아빠가 남의 얘기를 잘 들어 손해를 본다며

나를 몰아 세우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 자문해 봅니다.아마 모두에겐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있나 봅니다.

쓴 얘기가 아닌 달콤한 얘기겠지요

사람을 망치는 말은 바로 이것일 겁니다.

옛 위인들은 충신의 쓴 충언을 고맙게 여겼습니다.

나는 위인이 못되는가 봅니다.벌써 쓴게 싫으니,

그럼에도 누군가의 충신이되고자 하니 가소롭습니다.

이글을 쓰면서 주변을 훓어보니 베토벤이 참 많았습니다.

김토벤,박토벤,최토벤,곽토벤등

그리고 여기 일산에도 살고 있습니다.예토벤이라고, 히히

잠30:12)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 오히려 그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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