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아빠
페이지 정보
본문
아내가 전한 아이들의 말인즉
"아빠가 교회를 개척하시더니 소심해 지신것 같아
속상하다." 는 거였습니다.
덕분에 자칭 별명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가난한 아빠
머리카락 빠지는 아빠 그리고 소심한 아빠
그후 이말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소심해 진 것이 맞았습니다.
마음이 작아 졌고
행동반경도 좁아 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말이 기분 나쁘진 않았습니다.
누구나 세월과 함께 가는 자연스런 모양이고
아이들이 컸다는 반증도 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아빠가 크게 느꼈던 적이 있었고
그 아빠가 작게 느껴지던 때가 있을 겁니다.
마치 어릴때는 초등학교 운동장이 한없이 넓었지만
큰 후에는 작게 느끼는 것처럼
나는 여전히 나 이련만
아이들이 자라 그만 다르게 느끼고 있나 봅니다.
이렇듯 자란 만큼 지혜도 있고 판단력도 있어
아빠에 대한 그리고 타인에 대한 헤아림도 있을 듯 하니
그만 대견해져 감사드렸습니다.
사실 늙어도 이런 헤아림 없는 위인이 얼마나 많습니까?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철이란 게 무엇입니까?
뭐 별 난 건가요?
나 아닌 이들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것 아닌가요?
남편이 철 난 때는 함께 살아 주는 아내가 고맙게 느낄 때요
아내가 철 났을 때는 잠든 남편이 측은히 보일 때 일 겁니다.
자식도 마찬 가지지요
한창 유행이 어떻고 모 연예인 어떻고 할 때 그렇지 않고
부모의 어디든 헤아림이 곧 철 일겁니다.
내 아이들이 큰 것 아니 크는 것,
몸 크고 키 자라는 것은 쉽게 알았지만
이토록 마음이 크는 것은
그네들의 입술의 말로써
비로써 알 수 있었답니다.
아이들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면
소심한 아빠라는 말보다 몇 갑절의 지적의 말을 들어도
이제는 신앙성숙을 방증하는 말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컨대 "아빠!목사님 맞으세요?"라든가
아니면 "아빠의 설교가 좀 부실해요"
혹은 "아빠를 목사님으로써 존경해요"등
내가 더 작아지기 전에 듣고 싶네요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듣고 싶네요
마16:15~16)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