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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진짜로(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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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09-07-19 12:50 조회 5,39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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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말로? 진짜로? ’

신학교 졸업식 때의 일입니다. 식장에선 마지막 찬송으로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가 합창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골 골짝 빈 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하는 구절에서 곁에 있던 이 목사님이 낮은 음성으로 『참말로?』하는 것이었습니다. 생전 농담은 안할 것 같았던 이 목사님의 입에서 이외적인 말이 나왔기에 순간 웃음은 나왔지만 곧 참았드랬습니다.
이제는 『소돔같은 거리에도 사랑안고 찾아가서 』하는 부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로?』하는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의 다른 말은 없을 거라고 믿었던 나는 아까의 연속으로 더 웃게 되었습니다.
순간 내 속은 번뇌가 찾아왔습니다. 참말로? 진짜로? 하며 낮게 외쳤던 그 음성이 비록 웃자고 한 농담이든 자기자신의 독백이었든 무시할 수 없는 질문으로 내게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 질문은 제게 합당했습니다. 어느덧 복음보다는 나를 위해 사는 변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순간 내 입에서는 마치 나 아닌 이제 막 신학교를 졸업하는 그들을 변호하듯 변호성 말이 너무 쉽게 나왔습니다. 『아골 골짝이나 빈 들은 주님이 없으니깐 안가는거겠지 뭐 주만 따라 가오리다 했기 때문에 주님 계신 다른 곳을 찾지 않았겠어? 주님도 시대따라 다른곳에 계실테니까...』
아 가증함이여, 이 뻔뻔함이여! 자신의 불충성을 이렇게도 교묘하게 합리화시키다니... 식장의 찬송은 마지막 부분을 합창하고 있었습니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라』 곁에 계신 이 목사님이 또 낮게 말했습니다. 『언제부터? 해봐!』 이 목사님의 낮은 음성에 이제는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 역시 숱하게 이 찬송을 불렀으나 종 입네 하면서도 이름은 있어야 됐고 빛도 있어야 됐고 감사도 받아야 하며 섬김도 받아야 하는 자리에 서 있기를 즐거워했기 때문입니다.

이 목사님의 『참말로? 진짜로? 언제부터?』 등은 새로운 사명감에 벅차오르는 졸업생들을 빈정거리기 위함은 아닐겁니다. 어쩌면 선배로서 처음 각오와는 다르게 실패했던 고백이고 찬송가나 마음처럼 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시인일겁니다. 곁에 있던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날 새벽 닭으로 베드로를 깨우친 것 같이 성령님은 이 낮은 음성과 이 작은 말로 나를 한 번 더 깨우쳐 주신 겁니다.

그리고 몇날 후 주일 예배때 이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그때 나만이 아는 감격을 맛보며 찬송했드랬습니다. 나중에는 ‘한번 더’ 찬송합시다 하여 그 가사를 되새기도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전의 각오와 서원이 새롭게 올라왔습니다.

이거! 진짜로 『참말』입니다.
이거! 참말로 『진짜』입니다.
이거! 『언제부터』냐고 묻진 마십시오.
이거! 『해봐!』해도 무방하겠으나 사양하겠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 하리라”
(갈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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