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들은
젊으나 늙으나 대개가 즉흥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문득 어릴적 친구들이 보고파서
불러 모았습니다.
정한 곳에 나온 친구들은
그중 가깝고
그중 살만한 친구들이었습니다.
얘기는 많았습니다.
어릴때 하며
가정의 대소사하며
코스닥이니 노무현정권이니 하며
중년의 수다는 계속 되었던것입니다.
우리들의 수다는
신문과 방송의 기사와는 달랐습니다.
형제나 교우들의 진술과도 달랐습니다.
진솔하고 현장감있고
때로는 아픈 지적과 따끔한 충언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인 나는 이 수다 속에서
큰 세상이 주는 작은 나라의 설교를 듣습니다.
무엇을 감사하고
무엇을 염려하고
무엇을 관심있어 하고 등
시대의 감각을 느낄 수 있어
현장목회의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대체로 관계를 중시하고
대체로 노후를, 그리고 건강을 염려하며
대체로 지난 시간을 아쉬워 했습니다.
다만 수다는 길고 다양해도
육으로 난 만큼
육적인것을 자랑하고 그것을 사모할 뿐입니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혹시나 했지만 결국 역시나 하게 되고
그들이 내 뿜은 담배연기에
차 문을 열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목사 20년에 성경은 능통해도
자칫 세상을 모를 바보가 될성 싶은 때에
세상과 시대를 재발견하게 됩니다.
이래서 수다도 필요합니다.
잠1:22)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